지휘자 로린 마젤(왼쪽), 지휘자 번스타인(오른쪽).

전설적인 명 연주를 담은 클래식 음반을 '명반(名盤)'이라고 부른다. 반면 연주가 평균적인 수준에 못 미치거나 작품 해석이 심히 못마땅할 때, 비평가나 애호가들은 냉소적 시선을 담아서 흔히 '똥판'이나 '똥반'이라는 속어를 쓴다.

클래식 명반을 차근차근 정리한 안내서는 적지 않다. 그렇다면 거꾸로 악명 높은 '똥판'을 적시해놓은 책도 있을까. 거침없는 입담과 독설로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괴짜 칼럼니스트로 유명한 영국 출신 노먼 레브레히트(Lebrecht)의 저서 《거장들, 걸작과 광기》(마티)가 국내에 소개된다. 레브레히트는 이 책 말미에서 '세상에 나오지 말았어야 할 20장의 음반'을 뽑았다. 지휘자 카라얀과 레너드 번스타인, 로린 마젤과 바이올리니스트 야사 하이페츠 등 20세기를 수놓은 거장들이 그의 살생부(殺生簿) 명단에 올랐다.

첫 번째 타깃은 하이페츠가 녹음한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이다. 하이페츠 자신이 바이올리니스트 두 명의 역할을 모두 맡은 바람에, 제1바이올린 대목을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뒤 제2바이올린은 헤드폰을 쓰고 다시 연주했다. 레브레히트는 "자아도취라는 연못에 빠진 하이페츠가 또 한 명의 하이페츠를 바라보는 음반으로, 이보다 더 나쁜 연주는 상상하기 어렵다"고 신랄하게 평했다.

대부분의 음반 안내서에 명반으로 포함된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EMI)에도 레브레히트는 의문을 제기했다. 카라얀의 지휘에다 스비야토슬라브 리히테르(피아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바이올린),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첼로)라는 당대 최고 삼총사의 협연으로 불세출의 녹음으로 꼽힌다. 하지만 레브레히트는 "녹음 내내 잡음이 일었고, 음악적 소통 단절의 표본이었는데도 비평가들은 연주자들의 이름값에 혹해서 찬양일색이었다"고 주장했다.

명 지휘자들도 그의 과녁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번스타인이 지휘한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도이치그라모폰)에 대해서는 "9번째 변주인 '님로드'에 이르면 템포가 너무 느려서 마치 거꾸로 가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지휘자 로린 마젤이 빈 필하모닉과 녹음한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CBS)은 "아무도 자신이 연루되기를 바라지 않는 음반", 카라얀의 대표적 베스트셀러 음반인 〈아다지오〉는 "가히 오만한 해석의 표본"이라고 가차없이 깎아 내렸다.

그가 나쁜 음반으로 선정한 기준은 명확하다. "우리가 기억하고 되새겨야 할 썩어빠진 음반은 좋은 의도로 기획하고 최고의 음악가들이 참여했지만 애초의 목적에서 벗어나 서툰 모방으로 전락한 음반"이라는 것이다. 다음달 초 국내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