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의 밀양초등학교 2학년 5반 담임 김은아(52) 선생은 온라인에서는 ‘종이등불’로 불린다. 그녀는 조선일보 블로그 ‘빙하 속의 기억(blog.chosun.com/fedra57)’ 주인이다.

2005년 8월 개설된 이 블로그는 2009년 1월24일 현재 방문객이 227만 명을 넘겼다. 조선일보 블로그가 낳은 최고의 스타 블로그다. 블로그를 찾은 사람들 강권에 책도 두 권 나왔다. 한 권은 방문객 100만 명 돌파 기념 ‘내 사랑, 들꽃 같은 아이들(2006, 함께 가는 길)’, 또 하나는 지난해 나온 ‘거미여인의 노래(매직하우스)’.

두 권 모두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모은 책이다. 맵싸한 바람 불던 지난 주 밀양강변에서, 이 ‘엄청난’ 일을 저지른 그녀가 말했다. “블로그를 하기 전까지, 친구들도 내가 죽은 줄 알 정도로 숨어 살았다”고.

1979년 섬진강변 경남 하동의 한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하면서, 김은아 씨는 ‘고향’을 꿈꿨다. 원래 고향은 전남 고흥이지만, 경찰관인 아버지,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를 따라 전국을 떠돌며 살았다. 수줍기 짝이 없는 그녀 사투리는 전라도와 경상도 사이 어딘가를 오가고 있다. 그래서 김은아씨는 고향을 그렸다.

'종이등불' 블로거 김은아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젊은 날 한 신춘문예에 응모했다가 떨어지고 글을 접었다. 대신에 어머니를 따라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첫 부임지 섬진강에서 “처음 먹어본 계란 후라이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는 계집아이 이야기에 김은아 씨는 고향을 떠올렸다. 역시 교사였던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들 둘을 낳고 살았다.

“울산에 부임했는데, 대도시가 숨이 막히는 거예요. 그래서 남편이랑 다짐했지요. 고향에 가서 살자고. 어차피 고향 기억이 없으니 아이들에게 고향이 될 곳을 찾아 가자고요.” 방학 때마다 여행을 하며 고향을 찾았다. 함양과 산청, 밀양 가운데 밀양을 선택했다.

1990년 부부가 함께 밀양으로 부임해 고향을 창조하고 있던 즈음, 남편이 사고로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고향은 찾았지만, 삶은 멈춰버렸다. 지금은 또 다른 선한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황량하기 그지없는 마음에 김은아씨는 세상을 등지고 그저 학교와 집을 오가며 두 아들과 학교 아이들을 보살피며 살았다. “40대 후반, 그러니까 2004년 여름 유럽 여행을 다녀올 때까지는 친구들에게도 연락을 끊고, 없는 듯 살았답니다.”

유럽 여행에서 다녀와 쓴 기행문을 한 지인(知人)이 읽고선 말했다. "혼자 보기 아깝다. 김선생, 이거 블로그에 올리자." 블로그? 독수리타법에 인터넷은 남의 이야기로 알고 있는 내가?

조금도 어렵지 않다는 지인의 말에 조선일보 블로그에 들어가봤다. "클릭 한번 하니까 저절로 블로그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아, 이런 게 다 있네 하곤 블로그를 만들었어요."

제목은 ‘빙하 속의 기억’이라고 지었다. “내 40년 넘은 삶 가운데 얼어붙고 응결된 부분을 일기 쓰듯이 쓰자, 단순한 개인의 기억으로 기록을 하자.” 그런 마음에 기행문과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필명은 시인 김영랑의 ‘제야(除夜)’에 나오는 시구 ‘희뿌연 종이등불 수줍은 걸음걸이 / 샘물 정히 떠붓는 안쓰러운 마음결’에서 따왔다. 한 해를 보내며 정화수에 소원을 비는 여인의 자세다.

첫날 4명이 찾아왔다. “어떻게 내 블로그를 알았을까, 정말 신기했어요. 2주일 동안 매일 7명 정도 오시더니, 보름 지난 어느 날 한꺼번에 1000명이 오시는 거예요.” 본인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블로그 게시판을 뒤져보니, 아마도 ‘내 생애의 마지막 여행은’ 이라는 제목의 글로 추정된다.

“내년에 청산도 여행을 하자”고 약속했던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내년’이라는 시간은 영영 오지 않게 됐다는 내용이다. 김은아 씨는 “내가 여기 쓴들 이 세상 누가 알 건가, 그래서 가슴 속 응어리를 다 썼다”며 “종이등불이 아니라 김은아라는 본명으로는 죽어도 못 쓸 이야기들”이라고 했다.

며칠 뒤 조선닷컴 메인화면에 이 글이 소개가 되자 그날 하루 방문객이 7000명이 넘어버렸다. 댓글이 댓글을 부르고, 이웃 블로그들이 그녀의 글을 퍼올리면서 순식간에 그녀는 스타가 됐다. 진솔한 응어리가 공감을 일으키면서 ‘빙하 속 기억’이 모든 이들의 순례처가 되어버린 것이다.

무서웠지만, 재미가 났다고 했다. 20년 넘는 교직 생활 동안 겪은 눈물 나고 코가 찡한 아이들 이야기,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아내로, 엄마로 살면서 겪은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가명’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서 꾸밈 없이 써서 올렸다. 집에 돌아가면 일찍 잠자리에 들어 새벽에 깨어나 글을 썼다.

사진을 정리해 올리고, 블로그를 업데이트 한 후에 학교에 출근했다. 빨간 날에는 블로그가 휴식이었다. 1년 반만인 2006년 3월 마침내 ‘빙하 속 기억’은 방문객 100만 명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그녀 블로그의 단골 방문객 하나가 한 출판사에 그녀 블로그를 소개했고, 이 그 해 4월 첫 단행본 ‘내 사랑, 들꽃 같은 아이들’이 세상에 나왔다. 교사 생활 26년 경험을 적어 내린 교단일지다. 김은아씨는 “블로그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어딘가에 숨어 살았을 인생”이라며 “꿈도 꾸지 못했던, 내 삶의 방향을 바꾼 경험이었다”라고 했다. 그 사이에 이웃으로 등록한 사람은 500명이 넘었다.

이 가운데 5~6명은 오프라인으로 수시로 만나며 교류하고 있다. “올 초 친정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이어서 남동생도 하늘로 갔어요. 너무 충격을 받아 우울증에 걸렸답니다. 그때 블로그 이웃 분께서 강원도 별장을 내주셨어요. 큰 위로를 받고 돌아왔어요.” 뜸했던 블로그 활동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블로그 방문객 수가 다시 더블로 뛰어올라 200만 명을 넘겼다. 또 다시 이웃 블로거의 연결로 한 출판사에서 단행본 제안이 들어왔고, 그 해 11월 ‘거미여인의 노래’가 출판됐다. 출판사에서 “220만 네티즌의 가슴을 적신 주옥 같은 에세이”라고 부제를 붙이고, 저자 본인은 “19세 이상 성인 수필”이라고 평한, 한 여자의 진솔한 인생 이야기다. 첫 번째 책처럼 주인공 이름만 가명일 뿐, 그녀가 만난 혹은 그녀 본인의 가감 없는 인생 이야기로 가득 찼다.

지난해 12월 1일 대구에서는 온라인으로 만난 이웃 5명이 종이등불 김은아의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전국 각지에서 ‘따로 또 같이 사는’ 이웃들이 열어준 잔치였다. 잔치 멤버 가운데 하나인 필명 ‘피 -ta’는 “그녀의 팬이 된지도 4년이고, 조그마한 이야기까지 그녀의 사생활에 관여하게 되었으니 우리는 벌써 팬 이상”이라며 “현실에서는 꺼벙하되 글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정열적이며 적극적인 그녀를 열렬히 응원한다”고 했다.

이들은 그녀에게 “이제는 수필 말고 소설을 써달라”고 성화다. 정작 김은아씨는 “이렇게 커질 줄은 정말 몰랐다”라고 말하는데, 그 소리가 너무도 수줍고 너무도 작아서 겨울바람 속에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이 수줍은 여교사가 그 종이등불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