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1월 31일자 1면에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자신이 기르던 개와 함께 활짝 웃는 얼굴 사진을 공개했다. "증거가 명백하고 범죄방지의 공익이 크다면 얼굴을 공개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사진은 조선닷컴에서 이틀간 100만명이 넘는 독자들이 열람했고 많은 이들이 댓글에서 '얼굴 공개'에 찬성했다.

경찰은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을 들어 피의자 얼굴과 신상을 공개하지 않아왔다. "피의자 인권도 존중하라"는 국가인권위 권고에 따라 2005년 만든 훈령이다. 2007년 안양 혜진·예슬양 납치·살해사건 때도 범인 정성현의 얼굴을 공개하라는 논란이 벌어지자 인권위는 "범죄자라 해도 유죄 확정 전까지 얼굴과 신원이 노출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했었다.

그러나 강호순처럼 인간이기를 포기한 연쇄살인범에게까지 신원 보호원칙을 적용해야 하는지 따져볼 때다. 경찰은 강호순의 자백에 따라 그가 암매장한 시신 6구를 이미 확인했다. 이렇게 범죄사실이 명백한 반(反)사회적 범죄자까지 만에 하나 무죄가 될 것을 걱정해 보호해줄 가치가 있는가. 흉악범죄가 터질 때마다 범인 얼굴을 공개하라는 시민들 요구가 빗발쳤고 강호순의 현장검증에서도 주민들이 "저런 살인마 얼굴을 왜 가리느냐"고 항의했다. 인터넷에도 "억울하게 죽어간 피해자들의 인권은 어디 가고 흉악범 인권만 남았느냐"는 목소리가 높다.

흉악범 얼굴 공개는 시민들의 분노를 풀어주는 것 이상 공익효과가 크다. 당장 강호순의 얼굴을 공개함으로써 그가 극구 부인하고 있는 추가 범행에 대한 시민 제보도 나올 수 있다. 다른 잠재적 범죄자들에겐 얼굴이 공개될 수 있다는 압박이 된다. 그래서 미국 영국 일본 등은 진작부터 사회적 관심이 큰 중대사건 피의자는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고 있다.

흉악범 얼굴을 가리는 것은 변양균·신정아 사건처럼 공인(公人)의 얼굴 공개와 비교해서도 불공정하고, 경찰이 수배 범죄꾼들의 얼굴사진을 전국 곳곳에 붙여놓는 것과도 모순된다. 학계에서도 "중대 범죄자는 자발적으로 '공적(公的) 인물'이 된 셈이니 얼굴과 신상을 공개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있다. 이번 기회에 국가·사회적으로 중대한 범죄에 대해선 공익을 우선할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거쳐 새로운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