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경기 안양시 지하철 4호선 범계역 인근 한 빌딩 13층의 '보건복지부 129 콜센터'는 초등학교 강당에라도 온 것처럼 시끄러웠다. 2명 빼놓고는 모두 여성인 상담원 69명 전부가 거의 한 순간도 쉬지 못하고 전화기에 매달려 있었다. 오후 4시까지 걸려온 전화는 7124건. 오전 9시부터 4초마다 한 통화씩 걸려왔다. 작년 11월엔 하루 평균 2037건의 전화가 걸려왔다.

"사업 실패로 가족 셋이 한 끼에 라면 두 개로 때우고 있어요." "남편은 죽고 없는데 초등학교 2학년·6학년짜리가 있어 직장 다닐 형편이 못 되고…." 상담원들은 고달픈 하소연들을 놓치지 않겠다고 점심은 자리에서 대충 때워야 했다. 콜센터에 접수된 사연과 원하는 지원내용, 연락처가 행정전산망에 올라가면 전국 시·군·구 복지담당 공무원들이 현장조사를 벌여 1~2일 새에 '지원'이냐 '부적격'이냐의 판정을 내리고 있다.

지난 1월 음식점 폐업 후 자녀 둘과 함께 20만원짜리 월세방에 산다는 전남 여수의 50대 여성은 지난 2일 콜센터에 지원을 요청한 후 여수시의 소득과 재산조사를 거쳐 시로부터 긴급 지원금 24만5000원을 통장으로 받았다. 한 달치 지원금을 먼저 받고 나서 추가 조사 후 넉 달 동안 지원비를 받게 된다. 서울 양천구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산다는 60대 남성도 신부전증으로 치료 중인 병원 퇴원비 200만원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받아들여졌다.

혹독한 경제위기가 빈곤층을 후려치고 있다. 정부에서 생계비를 지원받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154만명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부모와 자녀가 돈을 벌고 있다는 이유로, 자동차나 집이 있다는 이유로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사각(死角)지대 빈곤층이 250만명은 된다고 한다. 여기에다 매일같이 부도기업들이 새로 쏟아내는 실업자, 장사가 안 돼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 사채를 썼다가 신용불량자로 추락한 사람들이 신(新)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얼마 전 IMF는 올해 성장률을 -4%로 전망했다. 이렇게 되면 실직자는 수십만 명 더 생겨나게 된다.

서울에서만 한 달 평균 3000명씩 개인파산을 신청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지금 막 빈곤층 대열에 합류했기 때문에 기존 사회안전망에서 제외돼 있다. 129 콜센터가 지난달 시·군·구에 긴급지원을 요청한 사람 1541명 가운데서도 40.9%, 630명은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직장을 잃으면 6개월간 실업급여에서 평균임금의 절반을 받는다. 그러나 비정규직은 고용보험에 가입한 일이 없어 그 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

이런 처지의 사람들은 식구 중에 아픈 사람이라도 생기거나 당장 생계가 어렵다든지 하면 있는 자산을 팔아치워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도와달라는 편지를 썼던 인천의 모녀 가정도 집세를 더 못 낼 형편이 되자 교회에서 사준 봉고차를 75만원에 팔았다. 그렇게 되면 일시적 빈곤층이 영구 빈곤층으로 곤두박질친다. 한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게 빈곤의 늪이다. 자활에 성공하는 빈곤층은 10%밖에 안 된다.

순식간에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사람들을 위해 긴급 지원 시스템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 조금만 도와주면 재기(再起)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신빈곤층의 추락을 방치하면 사회는 작은 자극에도 혼란에 빠지는 불안정 상태가 되고 만다. 사회불안이 경제를 더 수렁으로 빠뜨리는 악순환이 오는 것이다. 위기형 긴급 복지지원 제도를 만들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