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중반. 당시 서울 홍릉에 있던 카이스트(KAIST)에 홍콩과기대 설립준비단 일행이 도착했다. 미래전략의 일환으로, 국가 주도의 과학기술 연구대학 설립을 추진하던 이들에게 카이스트는 딱 떨어지는 모델이었다. 한 카이스트 관계자는 "이들은 연구 중심 대학의 운영 노하우나 연구원 인센티브 제도 등 기초적인 내용을 조사해갔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홍콩과기대 준비단은 당시 포스텍(포항공대)도 찾아가 한 수 배운 뒤 귀국, 1991년 초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다. 그로부터 18년 뒤, 홍콩과기대는 '아시아 대학 평가'에서 자신들이 모델로 삼았던 카이스트와 포스텍을 제치고 아시아 4위의 대학에 올랐다.

설립 18년에 불과한 홍콩과기대의 성장 속도는 경악할 수준이다. 포스텍 한경섭 교수(기계공학과)는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우리에게 한 수 배우겠다던 대학에 뒤졌다는 것은 매우 아픈 부분"이라며 "하지만 3년 전 직접 방문해 보니 연구성과를 못 내는 교수는 가차없이 퇴출하는 등 맹렬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와 QS가 실시한 '아시아 대학 평가'의 최대 화제는 홍콩의 돌풍이었다. 인구 700만명에 4년제 대학이 8개밖에 없는 홍콩이 최상위권을 싹쓸이해버린 것이다.

홍콩대와 홍콩중문대, 홍콩과기대 등 홍콩의 '빅 3' 대학이 각각 아시아 1·2·4위를 독식했다. 홍콩시립대와 홍콩폴리텍대도 18위와 38위를 차지해 아시아 50위 안에 홍콩 대학은 5개나 이름을 올렸다.

홍콩 대학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는 점,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거점) 도시라는 지리적 이점을 뛰어넘는 홍콩 대학들의 경쟁력 비결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이번 평가의 핵심 기준이 대학이 확보한 교수들의 능력이었고, 그런 기준에서 홍콩의 경쟁력이 돋보였다고 진단했다.

"정교수로 임용됐어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연봉이 깎인다. 초임 때보다 더 줄어들 수도 있다." 호주 캔버라 국립대에서 15년 전 스카우트 된 홍콩과기대 공대 부학장 김장교(55·기계공학과) 교수는 홍콩 대학들의 경쟁력 비결을 이 한마디로 요약했다. 교수 1인당 논문 수, 논문당 인용 수(citation), 학계평가(peer review)에서 홍콩의 대학들이 아시아 최고를 기록한 것은 이 같은 연구 풍토를 반영한다.

홍콩의 대학들은 온갖 조건을 내걸고 세계 각지에서 좋은 교수를 초빙하느라 열심이다. 기존 대학 연봉의 3배를 제시하는 것은 보통이고,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고급 아파트, 자녀 교육비(유학비 포함) 무한 보장 등의 조건을 내걸기도 한다. 이 같은 노력으로 홍콩대 교수의 절반은 50여개 국가에서 온 외국인이고, 홍콩중문대 경영학과에만 11개 국적의 교수가 강의를 하고 있다. 그러나 홍콩 대학에 초빙된 순간 교수들은 '행복 끝, 경쟁 시작'을 외쳐야 한다. 홍콩 대학들은 어렵게 '모셔온' 석학들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매년 교수평가를 실시해 성과를 내지 않고는 버틸 수 없게 만든다.

홍콩과기대 폴추(朱經武·68) 총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스카우트한 교수들을 정년보장(테뉴어) 교수로 임용하기 전까지 5년 동안 평가하는데 4년차 때 매우 엄격히 평가한다. 성적이 안 좋은 교수에게는 '떠날 준비를 하라'고 말해 준다"고 했다.

이 같은 교수들의 치열한 경쟁에다 타고난 국제화 유전자가 대학 경쟁력을 배가(倍加)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 폴추 총장은 "우리는 학교 설립 때부터 'Think outside the box!'(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새롭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라는 뜻)를 외치면서 세계 수준의 '창신'(創新·새로운 것을 창조한다)을 실천해왔다"며 "홍콩의 대학들이 세계에 문호를 완전히 열고 세계 수준의 인재 확보, 세계 수준의 시스템 정착을 위해 엄청난 재원을 쏟아 부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