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LG트윈스의 감독인 김재박이 프로초창기, 그리고 그 이전 실업야구시절 국내최고의 유격수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김재박이 뛰어난 선수였다는 것이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기 때문에 간혹 그 후세의 당대최고 유격수들인 류중일이나 이종범, 박진만 등과 비교되어 역사상 최고의 유격수에 대한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야구기술이 점차 발전하고 경기수나 선수들의 은퇴연령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지금의 기준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 중간세대의 선수들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듯 하다.

부드럽고 감각적이었던 최고의 수비수 류중일, 폭발적인 타격과 주루, 그리고 강한 어깨 힘을 자랑하던 이종범, 현존 최고의 유격수라고 할 수 있는 박진만은 분명 그 시절 김재박이 보여주었던 것보다 더 한수위의 기량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70년대 김재박이 보여준 그 스킬과 운동능력은 야구역사를 뒤엎을 혁명적인 것이었다. 유격수가 단순히 필드에 나가있는 한 명의 야수가 아니라 한 팀의 수비전체를 조율하고 지휘하는 개념으로 발전시켰던 선수, 포수만큼이나 타자 한 명 한 명을 연구해서 다른 포메이션의 수비를 보여준 예측수비, 남들보다 한두 걸음 뒤에서 수비하는 것에 충분히 자신 있었던 강한 어깨.

당시에 함께 뛰던 다른 유격수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이런 하나하나의 모습이 아직까지 야구팬들의 뇌리에 깊숙이 ‘명유격수 김재박’으로 남아있는 이유다.

간혹 30세 무렵에 데뷔한 프로무대에서 통산타율이 2할 7푼대이고 수상경력이라고는 도루왕 한번에 그친 그의 경력을 놓고 공격력이 수비력에 못 미치는 선수가 아니었냐고 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의 전성기는 분명 신생팀 영남대를 정상권으로 올려놓았던 대학 3학년 시절부터 한국화장품-성무에서 뛰던 실업시절이었다.
77년 창단된 한국화장품에 입단했던 그는 그 해 실업리그에서 대폭발을 이룬다. 한 해가 끝난 실업야구 통산성적에서 홈런, 타점, 타율, 도루 등 타격 4개 부문에서 최고성적을 낸 것.

도루를 제외하고라도 타격 3관왕을 차지한 선수는 프로 출범 이후 84년의 이만수와 2006년의 이대호가 기록하긴 하지만 당시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이었다. 물론 프로리그처럼 경기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40경기라는 적지 않은 경기에서 기록한 엄연한 1년 통산 기록이다.

당시 실업야구는 전후기제도와 함께 그리고 금융단과 실업단을 나누어서 리그를 벌이고 개인상도 수상하는 양대리그제도를 채택하고 있었는데 실업단 김재박의 기록은 금융단의 각부문 1위의 선수보다 단 한가지도 뒤지지 않았다.

77년 기록한 그의 정규리그 기록이 148타수 65안타로 0.439의 타율 1위, 13개의 홈런과 37개의 타점으로 각각 1위, 24개의 도루로 역시 1위.
신인상과 최우수선수는 당연히 따라왔고 최초의 타격3관왕을 기려 트리플크라운상을 수상하며 총 7관왕에 오른다.

그 해 정규시즌과는 별개로 기록되는 백호기에서도 0.455의 타율(이때는 2위)과 함께 MVP에 올랐고 니카라과에서 벌어진 슈퍼월드컵대회에서 한국은 사상처음으로 국제대회 우승을 차지하는데 이때도 타격상(0.426)과 최다안타상(23개), 도루상(6개)을 수상했다.

한마디로 실업야구 초년시절의 김재박은 수비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공격력만으로도 리그를 지배하던 능력자였던 것이다.

남겨져 있는 몇 개의 기록과 수상경력을 빼고는 김재박이 어떤 선수였냐고 설명하는 것은 지금에 와서는 불가능하고 자료도 남아있지 않다. 앞에서 말했든 야구기술의 발전으로 프로출범 이후의 유격수들이 기술적으로는 더 앞섰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샤인볼트라는 선수가 아무리 세계신기록을 작성했다고 해서 칼루이스나 혹은 제시오웬스를 넘어서는 역사상 최고의 스프린터라고 할 수 없듯이 시대를 넘어서는 선수들의 비교에서는 당 시대에 보여주었던 그 혁신적인 모습을 감안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상 최고의 유격수에는 김재박이라는 이름을 올려도 무방하지 않을까.

※ 최형석은 누구?

실업야구시절부터 한국프로야구의 시작,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30년 넘게 한국야구를 지켜온 열혈야구팬이다. 현재는 아마야구선수들과 프로팀 스카우트, 야구팬 등 약 7000명의 회원을 보유한 커뮤니티 온라인 천리안아마야구사랑의 운영을 맡고 있으며, 야구웹진 이닝(www.inning.co.kr)에서 옛날 야구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이크로탑10이라는 뉴스레터 발간사이트를 통해 약 2400명의 희망구독자에게 매일아침 프로야구에 관한 주요뉴스와 개인적인 소견을 정리하여 발송하고 있다.

▶ 최형석은 누구?

실업야구시절부터 한국프로야구의 시작,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30년 넘게 한국야구를 지켜온 열혈야구팬이다. 현재는 아마야구선수들과 프로팀 스카우트, 야구팬 등 약 7000명의 회원을 보유한 커뮤니티 온라인 천리안아마야구사랑의 운영을 맡고 있으며, 마이크로탑10이라는 뉴스레터 발간사이트를 통해 약 2400명의 희망구독자에게 매일아침 프로야구에 관한 주요뉴스와 개인적인 소견을 정리하여 발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