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주에 살던 김동균(29)씨는 중3때인 1995년 조기유학 길에 올랐다. 무역회사를 하는 아버지 덕분에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중3 때까지는 싱가포르에서 자랐고, 이후 부모와 본인의 희망이 맞물려 남들보다 일찍 유학 대열에 합류했다.

그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졸업한 미국 코네티컷주(州)의 사립 명문 초트 로즈메리 홀 고등학교를 거쳐 로체스터 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곧바로 유럽 증권회사의 서울 지사에 입사했고, 이후 뛰어난 업무 실적으로 이 증권회사의 뉴욕 지사에 스카우트됐다. 현재 연봉은 10만5000달러(1억3600만원)다. 김씨의 부모는 김씨를 교육하는데 등록금과 생활비만 최소한 32만달러(4억1000만원) 이상을 썼다. 그래도 부모와 본인 모두 "대만족"이라고 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자란 A(28)씨는 고1 때인 1997년 개인 사업을 하는 아버지의 권유로 미국 버지니아주의 사립 고등학교로 진학했고, 이후 지인의 신원 보증을 받아 공립으로 전학했다.

그는 미국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학교생활을 게을리해 부모 대신 자신을 돌봐주던 한국인 지인 가족과 불화를 빚었다. 지인의 집을 나와 현지에서 친해진 한국인 대학생의 집에 머물렀으나, 이번에는 학교에서 재미교포 학생과 주먹다짐을 벌여 퇴학당했다. 와중에 대학 진학도 실패했다.

A씨는 영주권을 따서 군 복무를 면했다. 그는 뚜렷한 직업도, 학적도 없이 20대를 보냈다. 현재 미국에서 부모가 차려준 식품점을 운영하는 그는 "한국으로 돌아가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조기유학을 와서 공부에 전념하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조기유학 1세대'의 귀환이 시작됐다. 해외유학 규제 완화와 세계화 열풍이 몰아친 1994년부터 IMF 외환위기가 수습된 2000년까지 최소한 1만명 이상의 초·중·고등학생이 봇물 터지듯 자퇴서를 내고 해외로 떠났다. 이들이 10여년에 걸친 학업을 마치고 속속 사회에 진출하고 있다.

본지 특별취재팀은 지난 2개월간 전문가 그룹의 조언을 받아 조기유학 1세대 100명을 심층 인터뷰하고 국내 기업과 외국계 기업 인사담당자 100명에게 조기유학생 출신 신입사원들의 ▲영어 실력 ▲업무 능력 ▲조직 적응력 만족도를 물었다.

취재는 순탄치 않았다. 오래 전 한국을 떠난 조기유학생들을 수소문해 일일이 현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연락이 닿지 않거나 인터뷰를 거절하는 이가 많았다.

취재 결과, 지난 10여년간 대한민국 중산층 부모들을 사로잡은 '조기유학' 모델은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로 분석됐다.

조기유학을 떠났던 이들은 대부분 "한국에 남은 친구들에 비해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낸 것에 만족한다"고 입을 모았다. 입시지옥과 획일적인 교육 방식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에 만족했다는 뜻이다.

세계를 무대로 뛰는 엘리트도 여럿 나왔다. 100명 중 10명이 '아이비리그 진학'에 성공했다는 점이 두드러졌다. 아이비리그는 브라운·컬럼비아·코넬·다트머스·하버드·펜실베이니아·프린스턴·예일 등 미국 동부의 8개 명문 사학이다.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의 금융회사에 들어간 심모(30)씨를 포함해 아이비리그 출신 10명 모두가 한국과 미국의 로펌, 홍콩과 싱가포르의 금융회사에서 억대 연봉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경제적인 면에서, 현재 만족도 면에서는 '절반의 실패'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었다. 이들의 평균적인 '현재 모습'이 그동안 투입한 교육 비용이나 유학 당시의 부푼 기대에 비해 다소 초라했던 까닭이다.

본지가 인터뷰한 조기유학 1세대 100명 중 60명은 한국에서, 24명은 해외에서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외에서 학업을 계속하는 이들(4명)과 국내외에서 취업준비를 하며 앞날을 '암중모색' 중인 이들(12명)도 있었다.

조기유학 1세대의 연봉은 '토종'보다 다소 높았지만, 결코 '대박'이라곤 할 수 없었다. 유학 지역과 유학 기간, 공·사립 여부에 따라 편차가 크지만, 대체로 조기유학생들은 사교육이 성한 서울 강남과 비교해도 2~5배 가까운 비용을 들였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온 60명의 평균 연봉은 4300만원(평균 연차 3년)으로, 국내 30대 기업 대졸 신입사원 평균 초봉(3300만원)보다 30% 정도 많은 수준에 그쳤다. 다만 해외에 남아 취업한 24명의 평균 연봉은 이보다 높은 8만달러(약 1억원)였다.

조기유학을 떠난 이들이 국내 취업을 택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됐다. "오랜 해외 생활에 지쳐 돌아오고 싶었다", "비자 문제로 현지에 취업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현지에 취직해도 위로 올라갈수록 외국인이라는 점이 걸림돌이 될 것 같았다"는 응답이 많았다. 향수병, 언어와 문화 장벽, 9·11 테러 이후 특히 엄격해진 미국의 이민자 정책 등이 이들을 귀환시킨 요인이었다.

그러나 10년 넘게 해외에서 생활한 조기유학생들에게 한국사회는 적잖은 시간과 공력을 쏟아 다시 적응해야 하는 '또 다른 외국'이었다.

이들은 국내 취업의 장애물로 ▲정보 부족(응답자 44명 중 14명·복수응답) ▲한국 조직문화에 대한 두려움(11명) ▲"회사에 잘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기업측의 선입견(11명) ▲"유학까지 다녀왔는데 국내 학생들보다 크게 우대받지 못한다"는 스트레스(6명) 등을 꼽았다.

뉴질랜드의 한 학교 수업 모습. 뉴질랜드에서는 학생들이 학과 수업뿐 아니라 다양한 과외 활동에 참가한다. 학교는 축구, 테니스, 수영 등 학생들이 평생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일찍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고1 때 유학을 떠나 미시간 대학을 졸업한 김모(여·24)씨는 지난해 대기업 계열 정보통신회사에 입사했다. 김씨는 "막상 한국에 왔더니 영어를 잘하는 국내파 지원자들이 너무 많았다"면서 "내가 떠날 때와는 달리, 다른 언어까지 잘하면 모를까 영어 하나 갖고는 명함을 내밀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에 놀랐다"고 했다.

기업의 평가는 아직 냉정했다. 국내 기업과 외국계 기업 인사담당자 100명에게 조기유학생 출신 신입사원에 대한 만족도를 묻자, 열 명 중 여섯 명(59%)이 '보통'이라고 했다. 또, 64%가 앞으로 조기유학생을 지금보다 더 뽑을 계획이 없다고 했다.

조기유학생들은 "행복한 10대를 보낸 데서 나오는 '낙관의 힘', 부모와 떨어져 어린 나이부터 혼자 힘으로 자질구레한 일상의 문제를 해결해온 '독립심'에 주목해달라"고 말했다.

고1 때 미국으로 건너간 김모(26)씨는 서부의 공립 고등학교를 거쳐 현지에서 이름 있는 주립대학을 마치고 최근 삼성전자에 합격했다. 서울 목동에서 자란 그는 사춘기 때 슬리퍼 바람으로 보란 듯이 등교해 매를 맞기도 하고, 성적도 하위권으로 떨어졌다.

부모의 권유로 조기유학 길에 오른 김씨는 초기에는 밤에 잠꼬대를 할 정도로 '영어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이후 축구 클럽에서 '잘한다'고 인정 받으면서 차츰 자신감을 회복했고, 고2 때부터 성적도 쑥쑥 올랐다. 대학 때는 만점에 가까운 학점을 받았다. 김씨의 부모는 "한국에 있었다면 대학 가기도 힘들었을 것"이라며 "미국의 우수한 교육제도의 혜택을 보며 바르게 자라 만족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