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가 인터뷰한 조기유학 1세대 100명 중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은 유학생은 24명이다. 그중 15명은 취업비자를 받고, 7명은 영주권을 취득해 현지에서 취업했다. 미군에 입대해 시민권을 취득한 사람과 비자가 만료돼 불법체류 중인 사람도 각각 1명씩 있다. 이들은 크게 ▲성공적인 유학 생활로 현지에서 살아남을 경쟁력을 갖춘 그룹 ▲한국에 돌아오기가 여의치 않았던 그룹 등 두 부류로 나뉘었다. 어느 쪽에 속하건 간에, 이들은 대부분 해외에 남은 이유로 '삶의 질'을 꼽았다.

허모(28)씨는 중3 때인 1996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교수인 아버지를 따라 6개월간 경험했던 미국생활에 매료돼 이후 매일 유학을 보내달라고 졸랐다. 허씨는 펜실베이니아주의 사립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명문으로 꼽히는 공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3학년 때 한국에 돌아와 통역병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2007년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전기회사에 취직해 6만달러가 조금 넘는 연봉을 받는다.

부모가 있는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졸업 전 한국의 한 대기업에서 3개월간 인턴생활을 해보고 미국에서 직장을 잡기로 결심했다.

조기유학생 출신으로 뉴욕 월가(街)의 한 증권회사에서 트레이더로 근무하는 김동균(29)씨. 김씨는 10만달러가 넘는 연봉을 받고 있다.

"한국 직장인들은 툭하면 야근과 주말근무에 시달리지만 여긴 '칼퇴근'입니다. 한국에서처럼 일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죠. 조직 문화도 강압적이지 않고 가정 위주의 생활을 보장해줍니다. 솔직히 직장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인생을 즐기며 일을 하는 미국 스타일이 내게 맞아 남게 된 것 같습니다."

미국 뉴욕에 정착한 김모(26·컴퓨터 프로그래머)씨는 "주말마다 뉴욕 양키즈의 경기를 보러 간다"며 "미국 직장도 근무 시간에는 엄청나게 일을 시키지만 주말과 휴일은 보장해주는 것이 불문율"이라고 했다.

한국사회의 불합리한 '벽'이 싫어 돌아오지 않은 경우도 있다. 고1 때 조기유학 길에 오른 A(28)씨는 미국 대학 진학에 실패했지만 현지에서 실내건축회사를 설립해 작년에만 40만달러의 소득을 올렸다. 직원 6명을 둔 A씨는 "미국에서는 별로 학벌을 따지지 않아 고졸인 나도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며 "한국으로 돌아갔다면 내가 이 나이에 벌써 아랫사람을 고용하고 사업을 이렇게 키울 수 있었을까 의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회의도 있었다. 미국 워싱턴 D.C의 한 로펌에서 4년째 서기로 일하고 있는 B(여·27)씨는 "미국생활에 점점 회의를 느껴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B씨는 "지금 하는 일은 어느 정도만 숙련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오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며 "다른 일을 찾고 싶어도 미국 기업들이 복잡한 신원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하는 외국인 유학생 고용을 점점 더 꺼리고 있어 영주권 없이는 번듯한 직장을 잡기가 힘들다"고 했다.

군대 문제 때문에 귀국 대신 해외 취업을 선택한 사람도 있었다. 미국의 명문대학을 졸업한 C(24)씨는 "솔직히 한국에 있으면 커피를 한 잔 마셔도 한국 말로 시킬 수 있고 한국 음식도 매일 먹을 수 있다"며 "그런 '작은 행복'들에도 불구하고 군대 문제 때문에 다국적 컨설팅 회사의 동남아 지부에 취업했다"고 했다. C씨는 "지금은 한국에 들어가서 6개월 이상 체류하면 징집대상이 된다"며 "한국에 있어야 행복할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해서 답답할 때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