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노인(老人)들을 '어르신'이라고 부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쓰는 말은 아니고 아마도 매스컴 용어로 만들어진 것 같다. 사전에는 '어르신'이 '어른'을 높여 부르는 말이라고 돼있다. '어른'이라는 말도 사전적으로는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니 결국 '어르신' 어디에도 '늙은 사람'이라는 뜻은 없다.

 미국에서는 노인을 가리켜 '시니어 시티즌(senior citizen)'이라고 부른다. 역시 매스컴 등에서 주로 쓰는 말이고 일반적으로 쓰지 않는 것 같다. 여기에도 늙었다는 의미의 올드(old)라는 단어는 들어가 있지 않다. 일본에서도 '어르신' 같은 추상적인 단어는 없고 높임의 뉘앙스를 가진 오도시요리(おとしより)란 말을 주로 쓴다고 한다. 이들 용어의 공통점은 '늙을 노(老)'자가 들어있지 않다는 데 있다. 아마도 나이 먹은 노인들을 '老'자를 써서 부르는 것이 늙은이 취급하는 것 같아서 그런가 보다. 노인들이 '늙었다'는 표현을 싫어한다고 본 모양이다.

 여기서 굳이 그 말의 뜻과 유래를 깊이 따질 생각은 없다. 다만 나는 그 어르신이라는 단어가 싫다. 내 주변의 친구들도 "어르신 좋아하네"라고 삐딱하게 받는다. 그것은 이 어르신이라는 말 속에 어쩐지 위선(僞善)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다. 나는 이 땅의 많은 '노인'들이 그들을 '어르신'으로 올려 놓고서는 뒤에서 어르고 뺨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TV프로에서는 이제 갓 40세쯤 되는 가수 겸 예능인을 '어르신'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들에게 그 말은 '연장자'의 의미일 뿐이며 거기에는 연령 감각도 없고 예의 같은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노인'이라는 말이 걸린다면 굳이 다른 말을 고안해내지 말고 '고령자'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상식적이고 순리다. 얼굴을 맞대고 얘기할 경우, 상대방 성씨를 알 때는 '○ 선생님'이라고 하면 될 것이고 성함을 모를 경우에 한해 '어르신'을 사용하는 것은 무방하다는 생각이다.

요즘 각종 매스컴에서는 연일 '고령사회'의 도래와 사회구조의 붕괴위험 같은 것을 대서특필한다. 이천 몇 년이 되면 노인인구가 몇십%가 넘고 신생아는 갈수록 줄어들어 우리나라는 '노인나라'가 돼 이대로 가면 '우리가 망한다'고까지 내다보고 있다. 그 기사와 내용들이 꼭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닌데도 노인들에게는 "왜 빨리 죽지 않고 오래 살아 젊은 사람들이 먹을 양식과 일할 직장과 살아가는 공간을 잡아 먹느냐"는 핀잔처럼 들린다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인가?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존엄사'를 거론하면서 어느 노인네의 생명을 존중한다면서 자연적이지 않은 어떤 죽음도 용납하지 않는 듯이 보도를 해 노인들을 헷갈리게 한다. 독설로 자학하자면 "너무 오래 살지 말되, 갈 때는 자연스럽게 애먹이지 말고 가시라"는 것처럼 들린다.

또 듣기 거북하거나 민망한 말로는 텔레비전 또는 실생활에서 자주 듣는 '어머님' '아버님'이라는 존칭이다. 친구의 부모, 또는 애인의 부모를 거침없이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언제부터 이 땅에 자연스럽게 정착(?)했는지 모를 일이다. 모든 인간에게 어머님과 아버님은 오직 한 사람씩이다. 그것은 세상의 어떤 것과도 타협할 수 없는 천리(天里)다. 어머님, 아버님은 한 분뿐이고 그 부름을 사용할 자격은 오직 자손들에게만 있다.

 그런데도 요즘 '어머님, 아버님'은 마구 남발되고 있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에게도 '어머님'이라고 하고, 그렇게 불리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관계에서도 어머님, 아버님은 대책 없이 마구 사용된다. 다만 아들 딸들의, 동기와도 같은 절친한 친구이거나 결혼이 전제된 관계의 예비사위·며느리에게서 그런 호칭을 받는 것까지는 있을 수 있다. 그 외에는 남의 부모를 '어머님, 아버님'으로 부르는 것은 예의에도 어긋나고 인륜대사에도 맞지 않는다.

마땅한 호칭이 없어 그렇게 부르는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또 그렇게 어머님, 아버님이라고 과장해 불러서 손해(?)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렇다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선생님이라는 호칭도 있고 또 여기에 딱 맞는 ‘어르신’이라는 표현도 있다. 사전에서는 ‘어르신’ 또는 ‘어르신네’를 남의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로 정의하고 있다. 굳이 그 호칭들이 맞지 않는다면 다른 말들을 고안해내고 사회적 동의를 얻어내는 것이 옳지, 하나밖에 없는 ‘어머님, 아버님’을 이런 저런 경우에 상관없이, 단지 높이기만 하면 된다는 천박한 생각에 남용하는 것은 이 땅의 진정한 부모에 대한 모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