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변경 무역센터가 들어설 중국 훈춘의 국제여객터미널과 세관의 모습.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중국을 연결하는 교량이다. 북한 평안북도 신의주와 중국 단둥(丹東)을 잇는 길이 946m인 이 다리는 철도용 1개 노선과 자동차용 1개 노선으로 이뤄졌는데 중국은 2003년 북한과의 교역을 확대하기 위해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벌여 하중 능력을 10톤에서 20톤으로 늘렸다.

그런데도 화물차들이 이 다리를 건너려면 상당시간을 대기해야 한다. 현재 북한과 중국 간 교역의 70%가 이 다리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때문에 중조우의교는 북한과 중국을 연결하는 '대동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과 북한이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방북(10월 4~6일)을 계기로 압록강에 새로운 다리를 건설키로 합의했다.

중국은 2007년 초 북한을 방문한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을 통해 건설비 전액(10억위안·약 1700억원) 부담을 전제로 새로운 압록강대교 건설을 공식 제의한 바 있다.

중국은 차세대 지도자인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지난해 6월 방북했을 때도 신(新) 압록강 대교 건설 문제를 거론했었다. 대북 교역량을 무시해도 좋을 정도인 중국이 신압록강 대교 건설에 공을 들여온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 이유는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진흥정책의 압록강 개발 사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현재 랴오닝(遼寧)·지린(吉林)·헤이룽장(黑龍江) 등 동북 3성에 대한 개발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중국이 신압록강 대교를 짓겠다는 것은 이를 통해 북한의 풍부한 천연자원을 동북 3성 발전에 이용하려는 속셈이다. 북한 자원의 가치는 6조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은 동북 3성의 배후기지가 될 수밖에 없다. 중국 언론은 원 총리의 방북 결과를 ‘입술과 이가 서로 의지해서 미래를 열어간다(脣齒相依 活未來)’는 새로운 표현으로 미화하고 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脣亡齒寒)’는 과거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군사적 동맹을 의미했다면 앞으로는 경제적 주종 관계로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경제대국으로 도약한 중국이 북한 경제를 거대한 원심력으로 끌어들인다면 북한은 중국의 ‘동북 4성’이 될 수도 있다.

이는 중국이 북한을 자국의 경제권으로 흡수하겠다는 전략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은 북한 정권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면서 자국의 국익을 위해 철저하게 주판알을 튀기고 있는 셈이다.

북한을 동북 3성의 배후기지로
압록강 등 단둥지역 대대적 개발

실제로 북한과 연결되는 단둥은 최근 들어 도시 전체가 바뀔 정도로 대대적인 개발이 진행 중이다. 신의주와 마주보고 있는 압록강변에는 고급아파트와 고급호텔들이 잇따라 세워지고 있다.

단둥시가 추진하고 있는 압록강 개발 사업 계획의 핵심은 압록강 하구지역에 세워질 총 97㎢ 규모의 단둥린강(丹東臨港) 산업단지이다.

단둥시는 이미 부지조성을 마치고 도로공사가 진행 중이다. 단둥시는 새 압록강대교 건설과 함께 선양(瀋陽)~단둥 철로 복선화, 단둥~다롄(大連)선의 화물적체 해소용 철로 건설, 인근 다둥(大東)·량터우(良頭)·다타이쯔(大臺子)·원안(文安)항 확장, 단둥 비행장 확장 등도 추진한다.

단둥은 또 이른바 '우뎬이셴(五點一線) 계획'의 핵심 도시 중 하나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7월 1일 이 계획의 공식 명칭인 '랴오닝 연해경제벨트계획(沿海經濟帶)'을 국가사업으로 추진키로 결정했다. 이 계획은 랴오둥(遼東) 반도를 둘러싼 후루다오(葫蘆島), 진저우(錦州), 잉커우(營口), 다롄, 단둥 등 5개 연해도시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어 개발한다는 전략이다.

중국 정부는 700㎢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에 대한 이 같은 개발 계획을 통해 조선과 정유, 장비제조 등 첨단 산업을 유치해 노후된 동북지역 산업을 진흥시킨다는 계획이다. 또 중국 정부는 랴오닝 연해경제벨트를 톈진(天津)을 핵으로 하는 빈하이(濱海) 경제벨트와 결합시켜 보하이(渤海)만 전체를 아우르는 초광역 경제블록을 건설한다는 구상도 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미 2015년까지 랴오닝성의 다롄과 산둥(山東)성 옌타이(煙台)를 잇는 해저터널 건설 계획을 세우고 있다. 동북 지역과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바탕으로 초광역 첨단산업기지를 건설한 뒤 보하이(渤海)를 통해 해양으로 진출, 동북아 경제권을 장악하겠다는 전략이다. 중국 정부는 이를 뒷받침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따라 동북지역 남단을 관통하는 둥볜다오(東邊道) 철도 사업이다. 다롄에서 단둥~퉁화(通化)~허룽(和龍)~옌지(延吉)~헤이룽장(黑龍江)성과 국경도시 수이펀허(綏芬河)에 이르는 이 철도는 총 연장이 1389㎞이며 15개 도시를 경유한다. 철도 인근 거주 인구만 2700 명에 달한다.

2011년 완공되는 이 철도는 동북지역의 천연 자원과 생산품을 해외로 수출하는 주요 수송로가 될 전망이다. 특히 이 철도는 단둥·퉁화·투먼(圖們) 등 북한과의 접경도시를 경유한다는 점에서 향후 경의선과 동해선이 중국과 러시아와 연결되면 양쪽 철도를 H자형으로 다시 연결하는 간선철도로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국경경비대 병사들이 북한과의 국경인 중조우의교에서 오성홍기를 게양하고 있다. photo 로이터 / 중국 투먼에서 북한으로 건너가는 다리. / 중국 랴오닝성 다롄에서 열린 국제자동차 전시회의 모습.

창춘~지린~투먼은 물류 전진기지
1조8000억원 투입, 무역센터 건설

중국 정부는 또 두만강 개발 사업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를 위해 지난 8월 30일 창춘(長春)~지린(吉林)~투먼(圖們)을 연결하는'창지투 선도구' 개발사업을 승인했다. 창지투 개발사업은 창춘과 지린, 투먼 일대 3만㎡를 개발, 동북아 물류의 전진 기지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북한의 나진과 선봉항을 이용, 두만강을 통한 동해 항로를 개척해 한국과 일본, 러시아 등과의 교역을 확대함으로써 동북지방의 물류 주도권을 잡겠다는 전략이다.

이와 관련, 중국 정부는 북한과 러시아 접경 지역인 훈춘(琿春)에 2016년까지 100억위안(약 1조8000억원)을 투입, 동북아변경무역센터를 건설하고 한국과 일본, 홍콩 등 외국 전용 산업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도 마련해왔다. 훈춘에서 출발하는 중·러 철도가 올 연말 개통되는 데 이어 훈춘~투먼 고속도로가 내년에 완공되고 지린~훈춘 간 고속도로도 조만간 착공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중국 다롄 환경설비 제조업체인 창리(創立)그룹은 지난 10월 7일 나진항 1호 부두 개발권을 따냈다. 창리그룹의 나진항 부두 개발권은 1호 부두의 2, 3호 정박지를 보수·확장해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용권이다. 38만㎡ 규모인 나진항은 겨울에도 얼지 않는 부동항이며 확장 공사가 완공되면 연간 100만t에 달하는 하역능력을 갖추게 된다.

창리그룹은 나진항 부두 개발권을 갖는 대신 북한에 훈춘과 나진을 연결하는 도로 93㎞를 건설해주기로 했다. 중국이 나진항을 통해 동해로 진출하면 훈춘을 전진기지로 한 두만강 유역이 동북아시아 물류 거점으로 발돋움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하얼빈 등 3개 도시 공업벨트 구축
국제공항 건설 등 내륙 개발 노력도

중국 정부는 이와 함께 동북 지역의 내륙 발전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개발사업은 헤이룽장성의 성도인 하얼빈(哈彌濱)을 중심으로 다칭(大慶)과 치치하얼(齊齊哈彌) 사이의 쑹넌(松嫩)평원에 ‘하다치(哈大齊·하얼빈~다칭~치치하얼) 공업벨트’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들 3개 도시 간에는 이미 4차선 고속도로를 완공해 교통을 3시간대로 단축시켰다. 하얼빈과 치치하얼에 이어 다칭에도 국제공항이 설립될 예정이다. 헤이룽장성 지역은 중국 영토를 닭 모양에 비유할 때 머리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 지역은 다른 성들에 비해 낙후한 곳이지만 물·석유·전기·삼림·자원 등 공업 발전을 위한 자원 인프라가 중국 전역을 통틀어 가장 풍부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얼빈은 매년 빙등제를 개최하는 얼음의 도시로 유명하다. 치치하얼에는 세계 4대 습지 중 하나인 자룽(札龍) 자연습지구역이 있다. 습지에는 세계적인 보호조류인 두루미를 비롯해 1000여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헤이룽장성은 또 중국의 ‘식량 창고’이다. 쑹넌평원과 싼장(三江)평원 사이에는 베이이다황(北大荒)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옥토가 조성돼있다. 전체 경작지는 2124만㏊로 한국 전체 농지(175만9000㏊)의 12배가 넘는다. 쌀·대두(大豆)·수수·옥수수·밀·사탕무 등이 재배된다. 연간 생산량은 약 400만톤으로 연 8000만명이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지난 6월 26~28일 헤이룽장성을 시찰하면서 “적극적으로 현대화 대농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동북 지역에 대한 기계화 영농 사업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철강·석유화학 등 9개 분야 중점
현대화된 산업시스템 마련이 목표

중국 정부가 동북 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개발에 나선 것은 무엇보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포석이다. 중국 정부가 지난 8월 17일 ‘동북지방 노후산업기지 진흥에 관한 계획’을 결정한 것도 이런 때문이다. 원 총리는 당시 회의에서 “앞으로 9가지 분야에 중점을 두고 동북 지역에 대한 개발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 총리가 언급한 9개 항목의 발전계획의 제 1 순위는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 등 경쟁력 있고 현대화된 산업시스템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동북 3성은 1950~1960년대만 해도 중국 경제를 떠받쳐온 중화학공업 기지였지만 개혁·개방 이후 광둥(廣東)성과 창장(長江) 삼각주 개발에 밀려 낡은 공업기지로 전락했다. 때문에 동북 지역의 산업을 현대화한다는 것은 중국의 개발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동북진흥계획에 포함시킨 내몽골 자치주 동부(蒙東地區)까지 합하면 중국 동북 지역의 전체 면적은 145만㎢, 인구는 1억2000만명(전체 8.3%), 국내 총생산량(GDP)은 전국의 11.33%에 이른다. 중국 정부가 내몽골 일부를 동북 지역으로 편입한 이유는 이 지역의 풍부한 천연자원 때문이다.

내몽골 동부의 면적은 66만5000㎢로, 전체 자치구의 56%를 차지하며 석탄 확인 매장량은 909억6000만톤, 석유 매장량은 10억톤이다. 동북 3성의 경제기반은 자원 대량소비형의 중공업에 의존하고 있어 단기간에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자원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내몽골 동부를 편입시킨 것이다.

한국·러시아·일본의 투자 견제
동북아시대 대비한 선점 전략

두 번째는 앞으로 동북아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남·북한의 통일, 러시아의 극동 개발 전략, 일본의 동해 진출 전략 등에 맞서려면 자국의 동북 지역 개발을 우선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경제적 우위를 선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외교적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동북 지역은 과거 만주(滿洲)라고 부르던 곳이다. 흔히 말하는 만주는 1932년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영토를 일컫는다. 당시 중국을 침략하려던 일제가 만주를 먼저 점령했던 것도 이 지역이 지경·지정학적 전략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일본과 유럽 학계에선 중국의 동북 진흥정책을 ‘만주노믹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만주노믹스는 만주(Manchu)와 경제학(Economics)의 합성어로, 만주지역 특색의 경제 발전 전략을 말한다.

지금도 일본은 동북 3성에 대한 투자를 가장 활발하게 하고 있다. 4000여개 일본 기업이 있는 다롄은 ‘중국 속의 작은 일본’이란 말까지 듣고 있다. 러시아 정부도 ‘2008~2013년 극동·시베리아 발전 계획’에 따라 중국과의 변경 지역 개발에 220억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중국과 러시아와의 변경무역도 활기를 띠고 있다. 대표적인 변경무역 중심지 쑤이펀허에선 헤이룽장성 교역의 3분의 1이 이뤄지고 있다. 헤이룽장성 정부는 러시아와의 국경지역에 10㎢ 규모의 자유무역지대를 지정해 러시아 기업을 끌어들이고 있다. 한국도 통일에 대비해 중국 동북 지역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조선족이 집단 거주하고 있는 동북 3성은 한국과의 문화적·민족적 유대가 끈끈하다. 원 총리가 지난 3월 구성된 동북진흥 영도소조의 조장을, 랴오닝성 당 서기 출신인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 중 한 명인 리커창(李克强) 부총리가 부조장을 각각 맡아 동북진흥 정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도 중국의 ‘미래’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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