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명사와 민속학 관련서를 주로 써오고 있는 주강현씨는“지난 18년 동안 매일 평균 30장 내외의 원고를 써왔다”고 말했다.

"글쎄요…. 박사 논문을 확장한 《두레, 농민의 역사》는 자료 조사만 15년 걸렸고, 《돌살, 신이 내린 황금 그물》은 책 뒤에 '조사 연보'도 따로 정리했지만 20년을 들였습니다. 각각 830쪽, 710쪽 분량이지요."

"책 한 권 쓰는 데 얼마나 걸리느냐"는 물음에 민속학자 주강현(54)씨는 "별 무식한 질문을 다 들어본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걸 어떻게 일률적으로 말할 수 있느냐는 얘기다.

첫 저서인 《굿의 사회사》(1991년) 이후 지난해 《적도의 침묵》까지 주씨가 낸 저서는 38권. 공저와 보고서류(類)를 제외한 단독 저서가 그렇다. 대부분 500~700쪽 분량이라 모두 쌓으면 자신의 목젖까지 올라온다고 한다.

그중 가장 많이 팔린 책은 1996년에 나온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전 2권)이다. 솟대·온돌·장승·초가·한옥·개고기 등 한국인의 습속(習俗)을 잘 드러내는 대상들을 다룬 이 책은 48만부가 팔렸다. 자신의 저술 작업에 유별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주씨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국민 교과서'인 셈이다.

주씨는 경희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국문과에서 대동굿 연구로 석사, 농민생활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고려대에서 문화재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국토해양부 소속 해양문화재단 이사이자 제주대 석좌교수인 주씨는 개인 연구소를 2개(한국민속문화연구소·해양문화연구원) 갖고 있다. 그는 오로지 책을 써서 밥을 벌어 왔음에도 최근 5년 동안 매해 '최소 한 장(1억원)씩' 수입을 올리고 있다.

주강현씨는 10년 전부터 특히 바다를 둘러싼 문명사에 집중하고 있다.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 《관해기(觀海記)》(전 3권) 《등대-제국의 불빛에서 근대의 풍경으로》 《독도 견문록》 등이 그 결과물이다. "문화의 종(種)다양성 및 해양문명의 원형에 관심이 많습니다. 해양세계의 오묘함에 깊은 매력을 느껴서 일본·중국·러시아 등 아시아 바다는 물론 시베리아·태평양 연안과 대양의 섬으로 시야를 넓혀가며 비교해양문명사 연구에 몰두하고 있지요."

저술가로서 주씨는 세 가지 원칙을 갖고 있다. 반드시 현장을 찾고, 관련된 문헌 조사를 하며, 현장 주변 사람들의 구술을 녹취한다. "보통 교수들이 하듯 논문을 모아 책을 내거나, 자료 짜깁기를 한다면 100권도 금방 돌파할 수 있습니다."

철저한 현장 중심이라 지난해 나온 《독도 견문록》을 위해 독도를 9차례나 밟았고, 매년 2000만~3000만원을 답사 비용으로 쓴다. 이런 현장성은 책에 실리는 수많은 관련 사진을 100% 스스로 찍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슬라이드 20만장을 포함해서 30만장의 사진 아카이브를 갖고 있습니다. 연구실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지요. 세계 각 지역의 민속이나 바다 위주의 사진으로, 촬영 시간과 장소 등 연혁이 분명한 자료 사진들입니다." 자료가 충분히 쌓이면 4~5개월 동안 매일 10~14시간씩 작심하고 쓴다.

주씨의 책은 인문학 독자들이 주로 찾지만 출판기념회나 사인회 때 보면 의외로 여성 독자층도 꽤 두텁다고 한다. 다루는 소재 때문인지 가장 충실한 구매층은 교사들이다. 올해 6개월가량 해외에서 체류하며 자료를 풍부히 모아둔 덕택에 내년에 5권을 포함, 앞으로 2~3년 동안 10권 내외의 신간이 나올 예정이다. 7월 한 달 동안 머문 뉴욕에선 영어 원서만 2000만원어치를 구입했다.

"50대 중반이면 지식이 꽤 축적된 시기입니다. 소설은 20~30대 감각이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인문학은 지금부터가 전성기인 셈이지요. 며칠 전 타계한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처럼 80대까지 책을 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