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와 한국학술협의회, 대우재단은 서양 고전철학의 권위자인 이태수(65) 인제대 교수(전 서울대 교수)를 초청, '2009 제11회 석학연속강좌'를 갖는다. 〈인간의 자기 이해〉를 주제로 강연하는 이 교수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서양문명의 근원으로 지목하고, 고전 속에 담긴 인간의 정체성을 규명할 예정이다. 이태수 교수와 이진우(53) 계명대 교수(서양철학·전 계명대 총장)가 연속강좌에 앞서 대담을 가졌다.

오디세이아는 서양 문명의 원형

이진우=선생님께서는 금년 상반기에는 서양고전학에서 윤리사상의 출발점을 주제로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를 맡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반기에는 서양의 전통에서 더 근원적인 문제를 주제로 석학연속강좌를 하시는군요. 특히 서양사상의 초창기에 나오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다루시는 것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사실 서양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오디세이아》가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알지만, 이를 심각하게 살펴볼 기회가 있는 편은 아니거든요. 또 이 책을 중심으로 '인간의 자기 이해'란 주제를 말씀하시는데, 주제가 무척 무거워 보이기도 합니다. 우선 왜 《오디세이아》가 중요한지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이태수=시작부터 핵심적이고 커다란 물음을 던지시는데요. 사실 이 물음은 서양인들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또 서양문화와 관련된 수많은 다양한 문제들과 관련을 맺습니다. 서양인들은 자신들의 학문과 사상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근거를 《오디세이아》에서 찾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서양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사상적인 뿌리를 규정짓기 위해서 중요했지만, 동양인들에게는 서양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아주 중요합니다.

이진우=《오디세이아》가 서양, 즉 유럽 문명의 원형을 담고 있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특히 《오디세이아》를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평가하시는데, 왜 그렇습니까? 서양에는 고전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많거든요. 서양의 중세나 근대 시대의 문헌들을 제외하고라도, 고대 희랍의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2009 제11회 석학 연속 강좌’의 연사인 이태수(왼쪽) 인제대 교수와 대담자 이진우 교수는“고전을 통해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성찰을 회복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고전의 장점은 해석의 다양성

이태수=고대 희랍 문화의 특징 중 하나가 경쟁입니다. 그 당시 여러 가지 구전 시가집들이 있었는데, 《오디세이아》가 경쟁을 뚫고 살아남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당시의 식자층에게서 《오디세이아》가 가장 좋게 평가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구성원에게 읽히고 배울 수 있도록 적극 지원받았습니다. 이렇게 이미 고대 희랍 사회에서 《오디세이아》는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게다가 후대에 서양문명의 원형으로 간주되면서 역사 속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뜻에서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부를 수 있지요.

이진우=《오디세이아》가 '고전 중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것과 언제나 고전으로 선정되는 것은 다르지 않을까요? 제 생각으로는 《오디세이아》의 탁월함은 해석의 여지가 넓어서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늘 중요하게 선정된다고 봅니다. 즉 역사가 바뀌면서도 누구에게나 받아들일 여지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이태수=맞습니다. 해석의 다양성은 고전이 갖는 탁월성입니다. 이것은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모든 고전에 해당됩니다. 또한 서양문명의 근원을 제시해서 서양문명의 정통성을 확립하도록 해 준다는 점 때문에, 서양에서 늘 고전으로 꼽힐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유독 《오디세이아》에서 볼 수 있는 특징입니다.

이진우=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서양학문을 하는 사람은 적어도 서양고전을 읽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선생님의 생각에 고전을 읽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현대는 '속도의 시대'라서 과거는 극복된 시대이고, 현재는 극복의 대상이고, 미래는 현재의 극복으로 이해되거든요. 성찰의 여유가 없는 '속도의 시대'에 아무리 고전을 강조해 봐야 공허할 뿐입니다. 고전은 과거의 유산으로 간주되고, 고전을 읽는 것은 아주 고리타분해 보이거든요.

지금 왜 고전이 필요한가

이태수='속도의 시대'에 고리타분한 고전을 읽는 것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물음에 대답하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합니다. 사실 요즘 인간이 경험하는 세상을 보면 100년, 200년 전보다 빨라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긴 인류의 역사에서 봐도 그럴까요? 우선 문자와 상징체계가 등장하면서 인간의 삶은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서양 역사를 보면 기원전 2000년에서 기원후 1700년대까지는 대체로 비슷한 속도를 유지했습니다. 농경 사회에서 대다수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은 늘 반복되고 변화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특권층에 해당하는 소수 사람들에게는 달랐겠지요. 새로운 것을 빠르고 쉽게 접할 수 있는 계층의 삶은 대다수의 사람들보다 빨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현대가 빠르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매체의 발달로 많은 것을 쉽고 빠르게 받아들이는 환경에서 현대인은 과거 사람들보다 훨씬 체감속도가 빨라졌습니다.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쉽고 빠르게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은 성찰을 허용하기 어렵습니다. 받아들이기만 해도 바쁜데, 어떻게 성찰할 수 있겠어요? 그러나 고전을 읽음으로 해서 현대인이 느끼는 과도한 체감 속도를 줄일 수 있겠지요. 어떻게 보면 고전을 읽으면서 이루어지는 성찰은 느림의 미학을 즐기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진우=우리의 경우 서양문화를 알기 위해서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만, 서양의 경우는 어떤가요? 서양의 경우는 삶의 방식에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고전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 같지는 않거든요.

이태수=서양문화의 전통에서 보면, 서구인들은 늘 고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의 고전문화는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기 때문에, 또 교육과정에 이미 녹아 있기 때문에, 굳이 고전을 강조할 이유가 없겠지요.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달라요. 우리에게는 고전이 없어요. 고전이 없다는 것은 표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서양의 새로운 사조와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어요. 이는 학문 영역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새로움에 대한 평가는 있지만, 오래됨이나 권위에 대한 평가에는 인색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누구나가 인정할 수 있는 고전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학문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은 출발점을 필요로 합니다. 그 출발점으로 고전은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합니다.

이진우=동양학도 마찬가지겠지만 고전에 대한 충분한 성찰 없이 서양 학문을 탐구한다면,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그럼 우리에게 필요한 고전은 어떤 것입니까? 또 우리에게 나름대로 합의된 고전이 있습니까?

고전이 없는 것은 표준이 없는 것

이태수=우리에게 합의된 고전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우리나라는 19~20세기를 거치면서 역사적으로 단절되었습니다. 한말(韓末)까지 교육은 동양 고전이라 부를 수 있는 문헌을 중심으로 극히 소수의 특권 계층에 한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서구식 교육이 시작되었는데, 그 당시 동양 고전은 버려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일본의 식민정책에 필요한 것들이 우선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방 이후 우리가 독자적으로 교육을 하는 상황에서도 고전의 필요성이나 고전에 대한 강조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동안 우리 사회는 급속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고전은 있지만, 합의된 고전이라고 할 것이 없다고 봐야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서양 고전이든 동양 고전이든 국적 없는 고전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필요한 고전이 어떤 것들인지 이제라도 고민해야 합니다.

이진우=이런 문제는 최근 자주 거론되는 인문학의 위기와도 관련되겠군요.

이태수=그렇지요. 사실 대학에서 보는 인문학의 위기와 일반인이 느끼는 인문학의 위기는 차이가 있습니다. 인문학은 늘 있어왔습니다. 다른 분야가 제대로 확립되기 전에 대학 내에서 인문학이 차지하던 위상은 학문 영역에서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의 대학에서 보자면 인문학 이외의 다른 부분에서는 확대와 확장이 이루어졌는데, 인문학은 늘 그대로거든요. 이게 인문학자들이 보기에 위기라고 보일 수 있습니다. 사회의 발전에 따라 나타나는 학계의 변화가 인문학의 위축 또는 위기로 비치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