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0시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일대에서 울려퍼진 '제야의 종' 타종 소리와 함께 경인년인 2010년 새해가 밝았다. 영하의 날씨에도 보신각 주변에는 7만명이나 되는 시민이 운집했다.

연합뉴스 1월 1일 보도

12월 31일 오후 11시 역삼동 E클럽. 대형 스피커에서 웅웅대는 기계음으로 실내가 조금씩 좌우로 흔들리는 듯했다. 20여 가닥의 녹색 레이저 조명과 수증기가 음악에 맞춰 뿜어져 나오는 가운데 '그들의 새해'가 밝아왔다.

검은 코트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갈색 부츠를 신은 모델(26)과 친구 셋이 앉은 테이블 곳곳에 샴페인, 보드카가 널려 있었다. 1320㎡(400평) 규모의 클럽에 1000여명의 남녀가 한손에 담배, 한손엔 술잔을 들고 몸을 흔들었다.

1일 오전 서울 역삼동 E클럽 댄스홀에서 젊은이들이 새해를 축하하며 즐기고 있다.

이 모델은 곧장 화장실로 갔다. 코트를 벗자 해골과 장미가 그려진 빨간 미니 드레스가 나왔다. 가슴부터 엉덩이까지 길이가 53㎝ 정도인 드레스 탓에 가슴골이 훤히 드러났다. 그는 부츠를 벗고 분홍색 굽이 달린 14㎝ 뮬(mule)로 갈아신었다. 뮬은 슬리퍼처럼 뒷부분이 없는 구두다. 화장실은 드레스룸 같았다. 옷 갈아입는 사람 천지였다. 비장의 파티복을 두툼한 겨울코트 속에 감추고 나타난 이들이다.

이 클럽 여자 화장실에서 청소를 하는 유모(여·60)씨는 "일한 지는 1년 정도 됐는데 담배연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있다"며 "부모들이 이런 걸 알겠느냐. '망년회 간다'고 했겠지" 라고 했다. 클럽 밖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입장료 4만원. 이날 클럽에 들어온 인파는 1500여명이다. DJ 너머 전광판의 디지털 시계는 0.0001초 단위로 '00시00분00초'를 향해 빠르게 내달리고 있었다.

'카이파파라치'는 자정 20분 전 등장했다. 어깨에 1800만화소 DSLR 카메라를 메고 있었다. 그가 포즈를 요구하자 모두 흔쾌히 응했다. 그는 "예전엔 사진을 찍다 뺨을 맞기도 했는데 요즘은 열에 아홉이 응한다"고 했다.

카메라 앞에서 여성들은 골반을 한쪽으로 '휙' 틀거나 게슴츠레한 눈으로 혓바닥을 내밀었다. 양팔을 모아 가슴을 부풀리거나 가슴과 옷 사이에 술병을 꽂기도 했다. 남성은 주로 성행위를 암시하는 포즈를 취했다. 그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렌즈를 들이댔다. 사진을 찍고 나선 블로그 사이트 주소가 적힌 스티커를 나눠줬다. 그는 2008년 12월부터 파티 현장사진을 찍어 '카이파파라치'라는 자기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이런 사진들이 지난해 여름 '청담동 클럽 사진'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상에 퍼졌다. 그는 평일에는 온라인 의류업체 화보 사진을 찍어 돈을 번다. 주말에는 청담동, 역삼동, 압구정동, 홍대입구 등지에서 파티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 앞에서 순간적으로 더 과격한 포즈를 취하는 거죠. 이런 풍의 사진들이 외국에는 더 많아요. 인터넷 사이트 중엔 코브라스네이크(The Cobra Snake)가 가장 유명해요. 저는 포토샵으로 약간 보정한 현장사진을 올려요."

같은 시각 1500명이 몰린 삼성동 G호텔에 '코브라스네이크' 사이트 운영자 마크 헌터(24)가 나타났다. LA타임스는 마크 헌터를 "패션쇼와 클럽 사진을 독창적으로 찍어 어린 나이에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사진가"라 평했다.

그는 "유명 DJ 스티브 아오키(32)가 공연을 한다길래 왔다"고 했다. 그는 반짝이는 검은색 레깅스(일명 쫄바지)에 검은 브래지어 차림으로 춤추는 이모(여·28)씨를 보며 "너무 귀엽다"고 외쳐댔다. "한국 사람들은 정말 섹시하고 정말 광적으로 노는 것 같아요. 저는 원래 LA 베벌리 힐스의 한국 음식점에서 파는 '붐밥'(비빔밥)을 아주 좋아해요. 한국에 파티사진을 찍으러 온건 2008년 이후 벌써 네 번째예요."

파티기획사 리스케이 장혜림(26) 대리는 "코브라스네이크나 카이파파라치는 '파티애니멀(파티광)'의 헝클어진 모습을 담아 '헤로인 시크(Heroin Chic)'라는 유행을 만들었다"고 했다. 마약에 취한 것 같은 분위기라는 뜻이다.

"Thank you 2009, Are you ready?"

"3, 2, 1, 0!"

'펑'하는 소리와 함께 은종이가 날렸다. 25세의 의과대학원생은 "친구들과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러 클럽에 들렀다"고 했다. 그는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에 모인 사람들처럼 와일드하게 신년을 맞고 싶어서 나왔다"고 했다.

"지난해에도 이곳에 왔었어요. 11년간 미국에서 공부했는데 미국 클럽에서는 일반인들이 지저분한 행동을 많이 해요. '청담동 클럽 사진'을 본 적은 없지만, 그에 비해 한국 클럽은 좀 덜한 편 아닌가요?"

홍보대행사 오피스H 조성하(26) 대리는 "4~5년 전부터 강남의 클럽 파티가 급속도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며 "연말연시에 경건한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 대신 숨가쁜 클럽 파티를 택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1일 오전 3시쯤 승용차로 15분 거리인 역삼동 E클럽과 삼성동 G호텔을 오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일부는 오전 9시까지 운영하는 애프터클럽(1차 뒤 2차로 가는 클럽)으로 몰려갔다. 택시와 자동차들이 꾸역꾸역 밀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