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실수로 딸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된 어머니가 법원의 노력으로 18년 만에 친딸을 찾았다.

지난 1992년 경기도 한 병원 산부인과에서 딸을 낳아 애지중지 길러온 박정숙(47·가명)씨는 2008년 여름 우연히 딸 혈액형이 A형인 것을 알게 됐다. 둘 다 B형인 박씨 부부 사이에서 나올 수 없는 혈액형이었다.

충격 속에서도 친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박씨는 자기가 출산한 병원에 당시 태어난 아이들에 대해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병원은 산모들의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대며 거부했다.

결국 박씨는 그해 10월 병원을 상대로 "아이가 바뀌었으니 1억2000만원을 배상하고 당시 병원에서 태어난 아이들 분만 정보를 공개하라"며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박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지난해 7월 "병원의 잘못이 인정되므로 7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면서도 '정보 공개' 청구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기각한 것이다.

그러나 2심인 서울고법 민사17부(재판장 곽종훈)는 박씨가 친딸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지난해 12월 "자신이 낳은 아이가 어디서 어떻게 자랐는지 알고 싶은 것은 당연한 부모의 마음"이라며, "병원으로부터 당시 출산한 산모에 관한 자료를 받아 비공개로 검토하겠다"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필요할 경우 판사실에서 비공개로 문서를 내도록 명령할 수 있다'는 민사소송법 조항을 적용했다.

재판부는 지난해 말 통상 산모들이 출산 전후로 평균 3일 정도 입원한다는 점을 감안해 박씨 출산일 전후 3일간 병원에 입원해 있던 산모들에 대한 정보를 병원으로부터 제출받아 검토했다. 그 결과 박씨가 딸을 낳은 전후 3일간 이 병원에서 출산한 산모는 4명이었고, 딸을 낳은 사람은 A씨 단 1명이었다.

박씨는 수소문 끝에 올해 초 A씨를 찾아냈다. 박씨는 A씨 부부에게 자신이 키워 온 딸과 친자 관계를 확인하는 유전자 검사를 받아달라고 부탁했고, 검사 결과 '박씨가 키워온 딸은 A씨 부부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재판부는 "당시 박씨 외에 딸을 낳은 산모는 A씨밖에 없었기 때문에 검사 결과에 따라 병원에서 A씨와 박씨의 딸이 바뀐 게 입증됐다"며 "마지막으로 A씨 부부가 키운 딸이 박씨의 친딸인지 확인하는 절차만 남았지만, 사실상 박씨가 딸을 찾은 셈"이라고 설명했다. 박씨도 지난 21일 법정에 나와 "딸이 하나 더 생겨서 좋고, 잘 해결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A씨 부부가 키운 딸과 박씨의 딸 모두 아직 자신을 키워준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박씨가 친딸을 찾게 되자 양측에 병원측이 손해배상액을 지급하는 내용으로 조정(調停)할 것을 권유했다. 조정은 판결 전에 당사자들이 합의하면 재판이 끝나는 법절차다. 이에 따라 25일 오전 열리는 조정 기일에 박씨의 오랜 '친딸 찾기'도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