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새벽 아파트 24층에서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된 삼성전자 이모(51) 부사장은 51번째 생일이었던 전날 혼자 술을 마시고 장문의 유서를 남긴 뒤 투신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A4용지 10여쪽 분량의 유서에는 "회사 때문에 힘들다", "우울증 때문에 고생했다"는 내용과 회사 내부 상황에 대한 언급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씨가 6층 집에서 24층 야외 테라스로 올라가는 모습이 CCTV에 잡혔다"면서 "화단에서 발견 당시 손에 깨진 양주병을 쥔 채 쓰러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의 한 지인은 "평소 술도 잘 안 먹는 건실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27일 삼성의료원에 차려진 빈소는 삼성전자 직원들이 취재진 출입을 통제했다. 삼성 직원들은 사람이 들어갈 때마다 신분을 확인하고 조문객만 빈소로 안내했다. 빈소 밖 대기실엔 삼성전자 홍보팀 직원 10여명이 몰려드는 취재진을 상대하느라 분주했다.

빈소는 이씨 부인과 아들 두 명, 가까운 친척들이 지켰다. 27일 오전 11시부터 저녁까지 50여명의 조문객이 찾았다. 삼성전자 직원 몇 명과 이씨 가족이 다니는 교회 사람들 30여명 그리고 자녀 친구들이 다녀갔고, 밤 10시가 넘어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과 사장단 20여명(계열사 포함)이 다녀갔다. 이씨 부인 차모(48)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다 감사하다. 그런데 저희는 정말 괜찮다"고 말했다.

이씨 주변에서는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던 그가 2년 연속 좌천된 인사에 크게 충격받아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씨는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일본 반도체를 앞지르기 위해 해외 인재를 적극 유치하던 1992년 입사한 S(Super)급 인재로 1998년 이사보, 2000년 상무, 2004년 전무, 2007년 부사장 등 초고속 승진을 해왔다. 이 부사장은 특히 2004년 플래시메모리 사업담당 전무로 발탁돼 휴대용 IT기기의 저장장치로 사용되는 플래시메모리의 폭발적인 성장을 주도해 그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영업이익률이 40%를 기록하는 데 크게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가 전무에서 3년 만에 부사장으로 전격 승진한 것도 바로 이런 공로를 인정받은 것으로, 삼성엔지니어 최고의 영예인 삼성펠로우에 선정됐다.

하지만 작년 1월 삼성이 단행한 대대적인 세대교체 인사에서 이씨는 비메모리인 LSI사업부 개발실장으로 밀려났고 올해 초에는 반도체를 위탁생산해 주는 파운드리(foundry) 공장장으로 발령났다. 이씨는 시가 80만원(27일)인 삼성전자 주식을 지난 7일 현재 8473주 보유, 주식가치만 60억원이 넘고 삼성전자 부사장 연봉이 10억원 안팎으로 알려진 점을 감안하면 돈 문제로 이씨가 고민한 것은 아니라고 주변에서 보고 있다. 삼성 주변 사람은 "이씨는 이번 인사발령을 굴욕적으로 느꼈을 것"이라며 "내성적인 성격인 이씨가 혼자 오래 고민하다가 그런 선택을 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2015년 이재용의 삼성은 어떤 모습일까?
사람들은 왜 자살을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