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떤 일이든 하나의 직업으로 삼아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그 직업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일을, 그 직업을 즐기며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택시 운전은 아쉽게도 주먹구구식입니다. 그저 오늘 수입이 얼마나 될까 걱정하는 정도입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온갖 정보가 쏟아지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야 되는 오늘날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트럭 조수경험 몇 년과 자가용 운전 경력 몇 년을 거쳐 지난 1988년 4월부터 택시운전을 하게 되면서 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부족한 교양과 시사상식을 가지고 겪은 세상의 부침이란 그저 좌절의 연속이요 초라함의 연속일 뿐이었습니다.

낙(樂)이라고는 하루 종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 것 뿐이었습니다. 승객들 중 간간이 마음이 맞는, 또는 기분이 좋은 상태인 승객과 대화를 나누며 목적지를 향하는 정도였습니다. 이런 직업의 세월이 23년이 되면서 저는 저도 모르게 어느덧 “도시의 사냥꾼”이 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그 동안은 ‘도시의 사냥꾼’으로서 느낀 각종 사회 현상들에 대해 그저 이 사회의 어느 한 귀퉁이에서 동료들, 때로는 승객들과 대화를 통해 불평불만의 소리로 흘려보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조선닷컴에 기고를 할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택시운전기사로서의 “나”를 자각하며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나름대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네티즌들과 소통해 보고자 합니다.

첫 이야기는 ‘시대별 아가씨들의 길 건너는 모습’입니다.

1970년대 : 차량 소통이 많지 않아서인지 자동차가 다가오면 두려움을 느껴 한참을 기다렸다가 차량이 완전히 지나간 다음에 길을 건넜습니다. 그러다가도 어디선가 차량이 다가오면, 나 살려라 길을 건너기도 하고요.

1980년대 : 신호등이 많아졌습니다.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드에서는 별 문제가 없지만,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여전히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길을 건너기 전에 먼저 운전자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운전자가 양보해 먼저 길을 건너가라고 손짓이라도 해주면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길을 건너가곤 했습니다. 고맙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해서인지 얼굴이 발그레해지기도 했지요.

1990년대 : 신호를 지키는 사람이 왕이다, 횡단보도에서는 사람이 우선이다 하는 개념이 사회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파란불이 다 꺼져가는 횡단보드를 늦게 들어선 보행인조차 세월아 네월아 하며 아주 느긋하게 길을 건너갔습니다. 바빠진 운전자는 경적을 울려대고, 기분 나빠진 보행자는 운전자를 힐끔거리며 인상을 쓰고.... 상황이 좀 뻔뻔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 : 핸드폰 생활이 일상화 됐지요. 거기에 귀에 MP3 이어폰까지 꼈으니 주변 소음이 귀에 잘 들릴리 없습니다. 경적을 울려도 그러거나 말거나입니다. 언제 어디서 차가 튀어나올지 모르는데도 불안하지 않나 봅니다. 길을 건너면서 차량들에 대해 지나칠 정도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누가 나를 건드려봐! 돈 버는 거니까!” 하는 듯 합니다. 운전자 입장에서 보면 황당한 일이 많아졌습니다. 심지어는 신호를 위반해  무단 횡단하면서도 완전히 느긋한 뻔뻔이들도 많아졌습니다.

2010년대 : 스마트폰 시대입니다. 귀로 들으면서 보행하던 것이 눈으로 보고 손으로 터치까지 하는 멀티 보행이 되었습니다. “이젠 어쩔겨?” 완죤 이겁니다. 앞으로 횡단보드 보행 중 핸드폰손동작 금지법이 생길지 모릅니다. 스마트폰 문화를 잘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택시운전 23년을 하면서 횡단보도에서 도대체 몇 번을 신호 대기했는지 모릅니다. 이때마다 자연스럽게 길 건너는 사람들을 살펴보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저만의 분석을 하게 됐습니다. 신호등이 바뀌기 무섭게 제일 먼저 발을 내딛는 사람 대부분은 몇 발자욱 가지 않아 다른 사람 뒤로 처지더군요. 횡단보도를 완전히 다 건널 때쯤이면 가장 늦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더욱 주목하게 됐습니다. 제 생각엔 아마 자기를 봐주는 사람이 주변에 별로 없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다 보니 외로워지고, 그래서 길을 건너는 상황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런 식으로 표현 되는 것 같습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다른 사람보다 반보 내지 일보 앞쪽에 서있는 분, 신호등이 바뀌기 무섭게 도로로 발을 내디딤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분, 어딘가 정서적으로 조금은 불안정해 보이는 그런 분들, 꼭 있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네티즌 여러분도 한 번 잘 살펴보시지요.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을 보고 사회가 필요한 사람과 회사가 필요한 사람이 다르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횡단보도 파란 신호등이 깜박깜박 할 때면 대부분 사람들은 마구 뛰어서라도 건너려고 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 한 아가씨가 횡단보도를 건너려다가 신호등이 깜박이기 시작하자 멈칫하더니 건너는 것을 포기하더군요.

그런데 이상하더군요. “그래 맞아. 저것이 정상이야”하던 제 생각은 이내 “왜 저 모습이 답답해 보이지?” 하는 생각에 묻혀버렸습니다. 우리 사회가 정말 필요한 사람은 저런 모습인데, 기업체에서 사람을 뽑는다면 과연 저런 모습, 저런 스타일의 사람을 뽑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앞서의 상황을 설정해 놓고 취업 면접시험을 본다면 취업생들은 과연 어떤 행동을 보일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기업체 오너님들 댓글 좀 달아 주셈-

◆이선주는 누구?

이선주(47)씨는 23년 경력의 택시기사다. 2008년 5월부터 차 안에 소형 카메라와 무선 인터넷 장비를 설치해 택시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동영상 사이트인 ‘아프리카(afreeca.com/eqtaxi)’에 ‘감성택시’란 이름으로 실시간 생방송하고 있다. 택시 뒷좌석에는 무선 인터넷이 가능한 카피씨(Car-PC)를 설치해 무료로 승객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조선일보를 비롯해 미 ABC 방송, YTN, SBS 등에 소개된 바 있다. 1999년에는 교통체계에 대한 정책제안 등의 공로로 정부가 선정한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 조선닷컴에서 ‘eqtaxi’라는 아이디로 활동하고 있다. ‘만만한게 택시운전이라고요?(1998)’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배꼽잡고(1999)’ 등 두 권의 책을 펴냈다.

[연재] '클릭! chosun.com'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