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연초 한 달여 만에 강동원(29)을 두 번 만났다.

한 번은 영화  '전우치', 두 번째는'의형제'를 앞세우고 마주 앉았다.

강동원은 〈전우치〉에서 “맘껏 나를 풀어놓고 신나게 뛰어논 작품”이라고 말했고, '의형제'에서는 “완전히 잠가놓는 연기를 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강동원은 인터뷰에서 연기에 대한 생각뿐 아니라 배우로서의 자의식, 스타로서의 서비스와 개인으로서의 사생활, 자연인으로서의 행복과 대중의 요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내보였다. 서른 즈음의 강동원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늘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밝혔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몫의 책임과 한계에 대해서도 매우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모른다”와 “관심 없다”는 표현도 꺼리지 않을 만큼 솔직했다.

'전우치'를 연출한 최동훈 감독은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머릿속에 오직 강동원밖에 없었다”며 캐스팅 뒷얘기를 들려줬다. 최 감독은 조언을 듣기 위해 〈그놈 목소리〉에서 강동원을 캐스팅했던 아내(안수현 PD)에게 “걔 어때?” 하고 물어봤단다. 그랬더니 “기묘해. 속도 잘 모르겠고. 하여튼 웃겨”라는 답이 되돌아왔다. 최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면서 강동원을 만나 장난도 치고 작품 얘기도 하면서 〈전우치〉 프로젝트에 강동원을 끌어들였다. 최 감독은 “이번 작품을 하면서 같이 망가져갔지만(웃음), 강동원은 책임감 있고, 거짓말할 줄 모르고, 깨끗한, 너무 멋진 친구”라고 말했다.

스타로서 강동원의 멋이라면 헌칠한 키와 잘생긴 이목구비, 누구라도 사귀어보고 싶은 로맨틱한 이미지가 첫손에 꼽힌다. 배우로서 강동원의 이미지와 표현력 속에는 '전우치'에서 보여준 짖궂고 익살맞고 희극적인 표정과 '의형제'에서 보여준 엄격하며 진지하고 절제된 언어가 공존해 있다. 고향인 경상도 사투리가 배어든 억양의 독특한 느낌도 강동원의 매력 중 하나지만 무엇보다 ‘눈빛’을 빼놓고 강동원의 연기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명세]

감독은 〈M〉에서 강동원이 맡은 캐릭터의 이름을 ‘슬픈 눈’이라고 했고,〈의형제〉에서 장훈 감독은 강동원에게 끊임없이 ‘흔들리는 눈빛’을 요구했다.

자연인으로서 강동원은 사실, 너무 많은 것을 드러내고 싶어하진 않는다. “배우를 그만둘 수는 있어도 스타의 사생활 공개에 대한 무리한 요구와 내 행복을 바꾸고 싶진 않다”는 비타협적 태도도 언뜻언뜻 보인다. 한편엔 “연기할 때 내가 제일 행복하다”는 욕망도 있다. 모델 데뷔를 첫 단추로 치자면 연예계 데뷔 10년차, 서른 즈음의 강동원에겐 단호함과 망설임 사이, 냉정과 열정 사이의 지적이고 감성적인 ‘균형’이 느껴진다.

[이명세]

감독의 'M'과 박진표 감독의 '그놈 목소리'에 출연한 것이 2007년이니까 '전우치'로는 관객에게 2년 만에 인사하는 것이고, 뒤이어 한 달여 만에 '의형제'로 전혀 다른 장르, 이미지의 연기를 보여줬다. 오는 3월까지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다국적 옴니버스 영화 프로젝트에 참여해 장준환 감독의 '러브 포 세일'에 송혜교와 촬영할 예정이고, 또 다른 스릴러 작품이 계획돼 있다. 그의 시간표에는 ‘가을쯤 군입대’라고 적혀 있기도 하다. '전우치'의 600만 명 돌파로 기세 좋게 경인년을 출발한 강동원과 만났다.

“잘됐다고 생각해요. 〈아바타〉에 밀려서 한 번도 (박스오피스에서) 1등을 못 해본 것이 아쉬울 뿐이죠. 내가 낳은 자식이 만년 2등이었으니까. 단 하루라도 좋으니까 〈아바타〉를 이겨봤어야 했는데. 〈의형제〉까지 내 작품이 극장에 걸려 있는 한, 〈아바타〉는 절대 안 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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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는 신나게 뛰어노는 역할이었으니까. 본격적인 코믹 연기는 처음이었지만 비교적 표정을 빨리 잡았어요. 반면 〈의형제〉는 완전히 잠가놓는 연기였죠. 감정선을 잡기 어려웠고, 어떻게 해도 무너질 것 같은 캐릭터였습니다. 돌아버리는 줄 알았죠."
'전우치'는 조선시대 탐관오리를 혼내주던 도사 이야기인 전래소설에서 모티프를 따온 한국 영웅담이다. 조선조 전설의 피리(만파식적)을 쫓아다니며 요괴들과 대결하던 전우치가 말썽을 피워 그림 속에 봉인됐다가 500년 후인 21세기의 서울에 풀려나면서 일어나는 모험담이자 판타지 영화다. 도술을 부리는 전우치는 술과 여자를 좋아하고, 일하기보다 놀기를 즐기며, 이름을 앞세워 뽐내기 좋아하는, 익살맞고 짖궂은 악동이다. 강동원이 세상을 희롱하고 세상에 희롱당하며 한판 걸쭉하게 펼치는 해학과 희극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뒤이어 개봉한 〈의형제〉는 남으로부터 버림받은 전직 국정원 요원 한규(송강호 분)와 북으로부터 고립된 남파 간첩 지원(강동원 분)의 기묘한 '동행'을 다룬 영화다. 지원은 상대 한규를 혐오하는 북한 엘리트 출신이다. 두 사내는 분노와 증오, 혐오로 시작해 연민의 정을 서서히 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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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입고 버림받고 불쌍한 인간이지만,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한 캐릭터죠. 특히 한규 같은 인물을 경멸해요. 표정으로 보여줘야 하는 장면도 많았는데, 시나리오 지문에 ‘흔들리는 눈빛’이라고 표현된 대목이 꽤 있었어요. 예를 들어 “창밖을 보면서 흔들리는 눈빛’ ‘상처 입은 짐승의 흔들리는 눈빛’ 같은. 그래서 매번 촬영을 시작할 때 우스개 삼아 감독에게 “오늘은 어떻게 흔들리는 눈빛이죠?”라고 물어보곤 했을 정도예요. 두 남자가 서로에게 감춰왔던 신분이 밝혀지는 순간은 감정적으로 완전히 무너지는 연기에서 억제되고 누그러진 분위기까지 13~14번이나 찍을 정도로 공을 들였어요.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촬영을 기다리던 신도 있었어요. 영화의 후반부에 "저는 아무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라는 대사는 처음부터 빨리 촬영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죠. 송강호 선배는 나를 가리키며 "저 빨갱이 새끼"라고 말하는 대목을 무척 재미있어했어요.

철저한 교육을 받은 북한 엘리트 출신 남파 간첩이니만큼 영화에서는 북한말을 쓸 필요가 거의 없었는데, 촬영 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북한 출신 분들의 함경도 사투리를 MP3로 녹음해 계속 듣고 다니기도 했어요.”

강동원은 〈의형제〉에서 굳게 닫힌 입과 단호한 어조 속에 동요와 불안, 연민, 고독, 허무를 꼭꼭 눌러 담아 표현한다. 이렇듯 희극적이고 해학적인 놀이마당을 만들었던 〈전우치〉나 절제된 연기 속에 극적인 심리변화를 연기한 〈의형제〉는

[강동원]

이 감당할 수 있는 세계의 폭과 깊이를 보여준다.

“'전우치'는 2007년에 최동훈 감독으로부터 제안을 받았어요. 너무 재미있겠다 싶었죠. 그렇게 고생할 줄도 몰랐으니까. 처음 제안 받았을 때만 해도 금방 촬영에 들어갈 것 같았는데, 할리우드 영화 〈점퍼〉가 개봉(2008년 2월)하면서 (비슷한 장면이나 설정 때문에) 시나리오를 바꿔야 했고, 그렇게 2년 6개월이나 묶여 있었습니다. 액션 장면 촬영도 힘들었는데 그렇게 고생이 심할 줄 알았다면 아마 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하하.

'의형제'는 '전우치' 촬영이 막바지였던 지난해 4월 제안을 받았어요. 사실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고 지칠 대로 지쳐 있어서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더 많았죠. 시나리오도 깔끔하긴 한데 정서적으로 부족한 느낌이고 해서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감독을 만나서 결정하자고 마음먹었어요. 감독을 만나서는 말이 너무 잘 통했고 결국 낚여버렸죠.”

"예전에 인터뷰할 때는 일부 매체의 기자들로부터 나를 억누르려고 하거나 길들이려고 한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어요. 그럴 땐 내가 더 반발해 튕겨 나가는 느낌이었죠. 아마 나보다 어린 세대들은 앞으로 더할 걸요? 언론으로부터 건전한 비판보다는 근거 없는 비난도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 행태에는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겁니다. 부당한 권위에 억눌릴 수 없지 않겠어요? 그런 것을 용인하면서까지 일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최근에는 저뿐만 아니라 제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적인 정보도 공개돼서 집안에서 갈등도 있었어요. 이런 것들은 타협하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제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연기하는데, 그런 일까지 감수할 수는 없죠.

사실 예전에는 이런 문제들에 훨씬 더 예민했지만 지금은 많이 편해지고 여유가 생겼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나야 어느 정도 공개된 삶을 사는 거지만, 내 가족이나 지인들이 나로 인해 부당하게 피해 보는 것은 못 참겠어요. 요즘도 인터뷰하면서 늘 고민이 되죠. 어디까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열아홉 살 때 모델로 데뷔했고 열 작품 넘게 출연했으니까 20대는 일한 기억밖에는 없어요.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유해진]

선배 말을 듣고부터는 괜히 우울해지고 그래요. 유 선배한테 말린 거죠. 작년 초 〈전우치〉를 촬영할 때 전주 세트장에서 유해진 선배와 군고구마를 까먹으면서 얘기했는데, 선배가 언제 데뷔했느냐고, 몇 작품이나 했느냐고, 외롭지는 않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뭐 그럴 때도 있다고 대답하고 말았는데, 유 선배는 ‘그거 갈수록 심해진다, 특히 너처럼 어릴 때 데뷔한 친구들은 더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영 마음에 남아서 안 지워지는 거예요. 친구들이랑 놀지도 못하고, 일한 거 말고는 다른 기억도 없고, 조금이라도 어릴 때 자유를 누렸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자책감도 가끔은 들죠.”

“이렇게 말씀드리면 엄청 뭐라 하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 돈은 별로 관심이 없어요. 지금도 충분히 받고 있죠. 물론 하려고 했다면 지금쯤 엄청 많이 벌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비즈니스는 관심도 없고 재주도 없어요. 제가 좋아서 선택한 일을 하고 있고 충분히 대가를 얻고 있어요. 물론 또래 연기자 중에서는 최하위권이지만. 앞으로도 연기 외에 다른 비즈니스를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여행 좀 가고 싶어요. 몇년 전에는 어머니 모시고 누나 가족과 함께

[태국]

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는 ‘효도관광’이었죠. 하하. 당시엔 정말 가족들에게 뭔가 해드리고 싶어서 제일 좋은 스위트룸에 모시고, 저는 아는 형하고 제일 조그만 방을 잡았었죠. 지금은 저 혼자 즐기는 여행을 하고 싶어요. 화보 촬영 같은 거 없이 그냥 마음 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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