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1시 강원도 속초시 동명동 속초항. 아래는 녹색, 위는 흰색으로 칠해진 선박 2척이 들어왔다. 배 굴뚝에는 붉은 별이 선명한 인공기가 그려져 있었다. 선원 대부분은 갑판에 나와 서 있었다.

선미(船尾)의 배 이름 밑에는 출항지를 알 수 있는 '흥남'이란 글자가 선명했다. 선박은 233t과 199t으로, 각각 북한 선원 18명과 16명이 탑승해 가리비를 싣고 들어왔다.

천안함 침몰과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암살 시도 등으로 남북 관계가 긴박해지는 상황에서도 강원도 속초항에는 거의 매일 북한 선박이 드나들고 있다. 입항하는 북한 선박들은 점점 늘고 있고, 이를 통해 반입되는 북한산 수산물은 한 달 평균 700여t에 달한다.

배가 접안하자 국립동해검역소 직원이 "선원 명단 주세요"라며 검역을 시작했다. 정장 차림의 북한 사람이 "예"하며 명단을 넘겼다. 검역원들은 가장 먼저 배에 올라 위생상태를 확인했다. 선원 모두의 체온을 재고, 육안 검사로 건강 이상 여부를 확인했다.

검역이 끝나자 세관과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 승선해 품목 외 물품이 있는지, 인원은 정확한지 확인했다. 북한 선원들은 이 절차가 익숙한지 선상에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고 담배를 피웠다.

확인 절차가 끝나자 크레인과 트럭이 도착해 가리비를 하역했다. 트럭에 실린 가리비는 인근 보세창고로 옮겨졌다. 보세창고에서는 세관 직원이 품목과 수량을 다시 확인했으며, 국립수산물품질검사원 직원이 가리비 상태를 검사했다. 통상 북한에서 반입되는 수산물의 경우 중금속이나 독소 검사를 많이 한다. 바이러스 등 질병 검사도 한다.

지난 20일 200t급 북한 화물선 2척이 가리비 44.8t을 싣고 강원도 속초항으로 들어와 하역하고 있다. 배 굴뚝의 인공기가 선명하다. 북한 선박이 동해안 항구를 자유롭게 드나들게 된 것은 2005년 8월 남북해운합의서가 발효됐기 때문이다.

창고에서 검사가 이뤄지는 동안 화주(貨主)는 달러로 가리비 값을 지불했다. 이날 들어온 가리비는 44.8t으로, 1t당 2800달러(311만원)씩 모두 12만5440달러(1억3900여만원)가 전달됐다. 여기에 배 1척당 운송료 1만5000달러(1666만원)와 북한 선원 몫 하역비 500달러(55만원)가 추가로 지급됐다.

돈을 받은 북한 배는 오후 6시10분쯤 속초항을 떠나 북한으로 돌아갔다. 출항 직전 북한 배에는 고기와 라면 등이 실렸다. 화물을 운송하는 선원들을 위해 화주가 주는 선물이다. 선원들은 북한에서 구하기 어려운 식용유·쇠고기·돼지고기·라면·독주 같은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한 번에 적게는 20만원, 많게는 50만원 상당의 물품이 선물로 전달된다. 한 선사 관계자는 "북한 선원은 우리 항구에 접안해도 일절 내리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물품을 구입해 배에 실어 준다"고 했다.

북한 선박이 속초항에 드나든 건 작년 6월부터다. 그전엔 중국 배를 통해 북한산 수산물이 들어왔다. 수산물은 대부분 가리비 등 조개 종류다. 작년 한 해 동안 9271t의 수산물이 속초항으로 들어왔다. 금액으로는 1507만달러(약 167억여원)어치다. 올해도 3월까지 2520t 53억원어치가 들어왔다.

반입량이 늘면서 속초항에는 거의 매일 북한 배가 입항한다. 작년 6월 4척에 불과했던 북한 배는 12월 33척으로 늘었다. 올해도 1월 18척, 2월 32척, 3월 61척 등 급증하는 추세다.

북한 선박이 동해안 항구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된 건 2004년 5월 채택해 2005년 8월 발효된 '남북해운합의서'와 '남북해운합의서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 합의서'에 따른 것이다. 승인과 허가를 받은 선박의 운행을 보장하고 항만 내에서 한국 선박과 동등한 대우를 한다는 내용이 합의서에 담겨 있다. 남측은 인천·군산·여수·부산·울산·포항·속초항을, 북측은 남포·해주·고성·원산·흥남·청진·나진항을 연결하는 해상항로를 개설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의류나 전자부품 등 위탁가공물이 수송되는 인천~남포 간 3232t급 북한 화물선은 평균 주 1회 운항한다. 농·수산물이 들어오는 부산~나진 간 1592t급 화물선도 월 1~3회 오간다. 반면 속초항은 200t급 안팎 북한 선박 10여척이 수시로 운항한다.

국내 화주들은 북한의 대남 경제협력 공식창구인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단둥(丹東) 대표부에서 계약을 체결하고 일정액의 담보금을 지불한 후 수산물을 반입하고 있다.

북한 선박은 통일부의 선박 운항 허가를 받고 국내 해역에서 해군과 해경의 철저한 감시를 받는다. 항로는 안보문제 등을 이유로 남측 해안에 붙어서 오지 못하고, 동해안 동방 25마일(46㎞) 공해상까지 나가 NLL을 넘는다.

["북한 사람은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