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4개월째인 며느리가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제 뱃속에 있는 아이도 아버님 같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썼더군요."

강원랜드의 잭팟 당첨금 7억6680만원 전액을 카이스트에 기부하기로 해 화제를 모았던 '잭팟 기부천사' 안승필(60)씨는 "며느리 이메일을 받고 너무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자신을 이해해 준 가족들이 고맙다고 했다.

27일 강원도 정선 강원랜드 호텔에서 열린 카이스트와의 기부금 전달식에서 안씨를 만났다. 안씨는 지난 15일 당첨 당시를 회상하며 "게임 시작한 지 10분이 채 안 돼 강원랜드 역사상 최고 당첨금이 터져 실감이 나지 않았다"며 "그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사채를 갚아야겠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27일 강원랜드 역사상 최고 당첨금인 7억6680만원 전액을 카이스트에 기부한 안승필씨. 그는 “대한민국 과학 기술이 세계 최강이 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어려운 사람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평소의 마음'대로 움직였다. 당첨 이튿날인 16일 서울 집에 도착한 그는 아내와 대학생 딸을 앞에 앉혔다. 그 자리에서 ▲빚 갚기 ▲불우이웃 돕기 ▲장학금 전달 ▲가족과 친척에게 쓰기 등을 놓고 고민했고 대화를 나눴다. 가정을 이룬 아들과도 상의했다. 충분히 대화를 나눈 뒤 안씨는 "좋은 일에 쓰고 싶다"는 결심을 밝혔다. 너무도 고맙게도 가족들은 하나같이 찬성했다. 안씨는 곧바로 평소 다니던 사찰의 스님에게 전화를 걸어 내용을 알렸고 스님도 "좋은 일이다"며 힘을 실어 줬다.

기부 대상으로 카이스트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국회의원을 지낸 이상희 국립과천과학관 관장이 TV에 나와 '중국을 앞서는 유일한 길은 과학기술 개발과 교육개혁으로 시대의 흐름을 타야 한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며 "원단 사업을 하면서 중국을 자주 가는데 과학은 잘 모르지만, 섬유는 중국이 우리를 앞지를 것 같아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20대 초반부터 원단가게 직원으로 일한 안씨는 지금은 서울 동대문 지역에서 6명의 직원을 두고 침구류 원단 디자인을 개발해 소규모 공장에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안씨는 기부를 결정하기까지 짧은 갈등의 시간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IMF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면서 40억원의 빚을 졌고, 아직도 7억여원 정도 남아 있다. 안씨가 잭팟에 당첨된 순간 머리를 스친 것도 '빚 청산'이었다. 하지만 예전 교훈을 생각하고 마음을 돌렸다.

"IMF가 터지고 빚을 지고 나니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거래처를 찾아가 '물러나더라도 빚을 갚고 물러나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매달렸습니다. 그랬더니 거래처에서 그간의 신뢰 때문인지 믿어 주더군요. 더 열심히 일해 빚을 갚아 나갔습니다. 그때 느낀 것이 '사람이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변에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적어도 5명만 있으면 무엇을 해도 실패하지 않는다고 믿게 됐습니다."

이후 그의 사업은 연 15억원 정도 매출까지 커졌으나, 최근 세계적 경제불황으로 6억~7억원으로 줄어 조금 힘든 상황이라 했다.

기부를 선택하기 전, 어렵게 사는 친척들도 걱정됐다고 했다. 시골에 있는 누님들은 농사를 짓고 있고, 여동생과 처남 가족들은 집이 없다.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기부를 결정한 뒤 친척들은 "잘했다"고 격려해줬고, 그게 너무 고마웠다고 한다.

안씨는 "젊었을 때 교복을 입고 다니는 모습이 부러워 공부하고 싶었지만 삶이 너무 어려워 많이 배우지 못했다"며 "대한민국 과학기술이 세계 최강이 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카이스트 장순흥 교학부총장은 "많은 곳에서 카이스트에 기부하지만 (안씨의 기부가) 가장 의미 있는 기부"라며 "과학기술 발전과 좋은 인재 양성에 쓰겠다"고 화답했다.

강원랜드는 이날 호텔 연회장에서 카이스트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아름다운 잭팟 기부금 전달식'을 갖고 안씨의 양손을 동판으로 제작해 카지노 객장에 영구 전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