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 귀신
최기숙 지음|문학동네|184쪽|9000원

조선 영조(英祖) 때 경상도 관찰사였던 조현명이 잠자리에 들려는데 갑자기 촛불이 깜빡거리더니 찬바람이 분다. 한 여인이 나타나 수도 없이 절을 하더니 "칠곡 아전의 딸인데 누명을 쓰고 맞아 죽었다"며 하소연한다. 이에 조현명은 10년 전 병으로 죽었다는 여인의 무덤을 파헤치고 검시(檢屍)한 후 여인이 계모와 삼촌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조선시대 야담집 기문총화(記聞叢話)에 수록된 이야기다. 연세대 국학연구원 HK교수인 저자는 대부분의 처녀 귀신 이야기에서 귀신이 직접 억울함을 해소하지 않고 남성 관리의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저자는 야담의 주요 독자층이 사대부 남성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여자 귀신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가 된다면 현실에서 관리가 설 자리는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처녀 귀신을 시대적 마이너리티라는 관점에서 읽어내려 시도한 책이다. 처녀 귀신의 소복을 '억울함과 분노를 부각하기 위해 탈색된 배경'이라고 해석했다. 흥미롭게 읽어볼 만한 책이나 뒤로 갈수록 주제에 대한 응집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