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을 넘긴 한국 록의 대부가 미국 시장에 진출한다. 17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자택에서 만난 신중현(72)은 "미국의 음반사 '라이트 인 디 애틱(Light In The Attic)'을 통해 제 음반 2종류가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배급될 예정"이라며 "최근 계약을 마쳤고, 음반은 10월쯤 발매된다"고 밝혔다. 작년 12월 그에게 헌정 기타를 만들어준 세계적인 기타 제조사 펜더사가 '다리' 역할을 했다. 2장의 CD에 신중현의 히트곡이 망라된 컴필레이션(편집) 앨범, 그리고 그가 작곡과 연주를 전담하고 여가수 김정미가 노래를 부른 74년 앨범 '나우(Now)'가 록의 본고장에 첫선을 보일 작품들. '바람', '햇님', '봄' 등이 수록돼 있다.

최승현 기자 vaidale@chosun.com

"'나우'는 무척 사이키델릭한 음악이 담겨 있는 앨범이에요. 저로서는 무척이나 음악적 욕심을 냈던 작품이었는데 당시에는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 채 묻혀버렸죠. 그런데 미국 쪽에서는 이 앨범에 흥미를 보이더라고요. 김정미씨하고 연락이 안 닿는 게 안타깝네요." 김정미는 당시 몽환적 음색으로 충격을 줬던 가수였으나 이후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그의 근황을 아는 이가 드물다.

자신이 손수 지은 40여평 남짓한 전원주택에서 온갖 음악 장비에 파묻혀 혼자 살고 있는 신중현은 들뜬 모습이었다. 과묵하던 평소 태도와 확연히 달랐다. "미군 부대에서 음악을 시작하고 록 세계에 입문했는데 이제 미국 전역에서 제 음악이 울려퍼진다고 생각하니 꿈만 같다"며 "늦은 나이지만 얼마든지 미국에 가서 직접 연주 활동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에릭 클랩튼(Clapton), 제프 벡(Beck) 같은 사람들과 함께 무대에 오를 수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펜더사로부터 헌정 기타를 받은 연주자들이 한자리에서 공연을 할 수도 있는 일 아니겠어요?"

미국 음반사를 통해 자신의 앨범을 전 세계로 유통시키게 된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 그는 펜더사로부터 헌정받은 기타를 손에 꼭 쥔 채“요즘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자꾸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작은 사진은 오는 10월 미국에서 발매될 신중현의 앨범‘나우’. 신중현이 작곡과 연주를 전담했고 노래는 신중현이 발굴한 여가수 김정미가 맡았다.

그는 자신의 한국적 기타 주법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서양 기타리스트들은 화려한 손놀림을 이용한 테크닉 위주의 연주를 하는데 저는 몸으로 깊게 소화한 소리를 들려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며 "기타는 기본적으로 연주자와 영적(靈的)인 교감이 이뤄져야 하는 악기"라고 말했다.

신중현은 이달 26~27일 제주 문예회관 대극장을 시작으로 서울 세종문화회관(7월 4일), 포항 경북학생문화회관(7월 24일) 등을 도는 전국 투어도 시작한다. 펜더 기타 헌정을 기념한 무대. 신중현은 "지난 2006년 말 무대 은퇴를 선언하며 '마지막 투어'를 했기 때문에 이번 공연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헌정 기타를 받고 나서 결국 저는 다시 무대에 서야 하는 숙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이런 명기(名器)를 연주하면서 저 혼자 만족에 빠져 있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팬들하고 함께 즐거움을 나눠야죠. 그래서 이렇게 다시 (기타를) 빼드는 겁니다."

이번 공연에는 그의 두 아들이자 뮤지션인 대철(시나위), 윤철(서울전자음악단)이 함께한다. 그는 "자식들이 음악 외의 다른 직업을 갖는다는 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순수한 음악인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대견하다"고 했다. 일주일에 2~3차례 연습을 위해 아들들이 찾아오지만 집은 늘 고적하다. "외로울 때마다 기타를 든다"는 록의 대부는 미국 본토에서 인생의 마지막 도전을 펼쳐보고 싶다는 꿈을 먹고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