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일본 시코구(四國) 북쪽 나오시마(直島)에 일본과 유럽에서 활동 중인 한국 작가 이우환의 작품을 소장한 '이우환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열린 개관전에는 한국과 미국·스페인 등에서 찾아온 큐레이터와 갤러리 대표, 컬렉터들로 북적였다.

이우환 미술관은 일본 베네세그룹의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과 함께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해 눈길을 끌었다. 미술관 주변에는 자연석과 철판을 설치한 이우환의 작품 〈관계항〉 등이 놓여 있었고, 입구까지는 길고 좁은 통로를 거쳐야 했다. 내부로 들어서자 작은 동굴 같은 느낌이었다.

미술관은 '만남의 방' '침묵의 방' '그림자 방' '명상의 방'으로 나누어, 15점가량의 회화와 조각 작품을 통해 이우환의 작품 세계를 파노라마처럼 펼쳐놓았다. '만남의 방'은 회화 〈선으로부터(1974)〉〈점으로부터(1976)〉 등 평면작품 중심이고, '침묵의 방'과 '그림자 방'은 자연석과 철판으로 이뤄진 설치작품 중심이다. 마지막 '명상의 방'에 이르자 안내인이 신발을 벗어야 한다고 말했다. '명상의 방'에는 회화 〈조응〉이 벽화처럼 그려져 있다. 이우환은 "관람객이 잠시나마 쉬어가라고 만든 방"이라고 설명했다.

이우환이 지난 15일 일본 나오시마에서 개관한 이우환미술관‘만남의 방’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이 미술관에는 이우환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대표작들이 전시됐다.

이우환은 "살아 있는 동안 개인 미술관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서 "내 이름을 단 미술관을 짓는다고 해서 망설이기도 하고 많은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미술관으로 어떤 공간이 가능할까 생각하다 컴컴한 동굴 안에 그림을 그린 알타미라 동굴을 떠올렸다"면서 "본다는 것을 넘어선 알타미라 동굴은 생(生)과 사(死)가 결부된 우주적 공간으로, (이우환 미술관에)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우환 미술관은 후쿠다케 회장이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으로 열린 이우환의 개인전 〈울림〉을 관람한 것이 계기가 됐다. 안도 다다오가 이우환 특별전을 후쿠다케 회장에게 권했고, 전시장을 둘러본 후쿠다케 회장이 미술관을 제안했다. 이우환은 "안도와는 잘 아는 사이이고, 미술관을 지으면서도 다툼 없이 순조롭게 이어졌다"며 "미술관 앞에 18m에 이르는 콘크리트 폴(봉)을 세운 것은 내 아이디어"라고 밝혔다.

미술관은 고요한 울림과 함께 충만한 에너지를 주고 있었다. 이우환은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에 전시됐던 작품처럼 전시를 통해 잘 알려진 작품이나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온 작품을 가져왔다"며 "후쿠다케재단에서 구입하거나 내가 기탁했다"고 말했다. 그는 "1970년대는 점을 찍어 무한을 표현하다가 터치하는 것과 터치하지 않는 것이 어울리는 가운데 무한이 나온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나와 나 아닌 것이 만날 때 무한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후 본격화된 설치작품은 돌과 철판을 가져와 제작한 것이다. 이우환은 대량생산된 '만든 것'과 자연 속의 '만들지 않은 부분'을 만나게 했다. 그는 "돌은 수만년 전에도 존재했던 것이고, 철판은 돌에서 뽑아내 제조한 산업사회의 산물"이라며 "둘을 마주 보게 함으로써 산업사회 이전과 이후, 그 밖에 만들어지지 않은 부분까지 느껴보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1936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이우환은 1956년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중도에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일본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이우환은 1969년 발표한 '존재와 무를 넘어서-세키네 노부오론(論)'에서 일본 현대미술 작가 세키네 노부오에 대한 분석을 통해 '모노하(物派)'가 모더니티를 넘어서는 운동이라고 주장했다. 이 글은 일본의 '모노하' 운동을 세계적인 사조로 올려놓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그리고 이우환은 스스로 자연석과 철판을 이용한 조각을 통해 모노하 이론을 창작활동으로 보여주었다. '모노하'란 인공적으로 생산되지 않은 것을 이용해 창조보다 관계성을 보여준다는 의미다.

이우환은 내년 세계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미술관으로 꼽히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갖는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갖는 한국 작가는 백남준 이후 처음이다. 그는 "생애 처음으로 하는 회고전"이라면서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2월 11일부터 2개월간 전시가 있고 미국의 다른 미술관에도 순회 전시를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나오시마는… 폐기물 쌓인 섬, 예술 낙원으로 탈바꿈… 섬 전체가 '미술관'

해변에 설치된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호박〉.

나오시마(直島)는 일본 가가와(香川)현 북쪽 해안에 자리 잡은 둘레 16㎞의 작은 섬이다. 원래 구리 제련소가 있던 곳으로 폐기물이 쌓이면서 황폐해져 가던 섬을 출판·교육 그룹인 베네세 그룹의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이 1987년부터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적인 미술 명소로 탈바꿈시켰다. 미술에 관심이 많던 후쿠다케 회장은 버려지다시피한 이 섬을 ‘예술 낙원’으로 만들어보자는 꿈을 갖고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1992년에는 잭슨 폴락과 데이비드 호크니·브루스 나우먼 등 세계적인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보여주는 현대미술관을 지었고, 2004년에는 건물을 땅 속에 지은 지중(地中)미술관을 세워 역시 제임스 터렐 같은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나오시마에는 또 버려진 빈집을 미술 작품으로 꾸민 ‘하우스 프로젝트’가 있고, 해변 곳곳에는 일본 작가 구사마 야요이의 ‘호박’ 같은 조각 작품들을 세워 섬 전체를 전시장으로 꾸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