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 문화부 차장대우

'새뮤얼 존슨상'은 해마다 영·미권에서 출간된 논픽션을 대상으로 하는 권위있는 저술상이다. 이달 초 발표된 이 상의 올해 수상작은 베이징 주재 LA타임스 통신원인 바버라 데믹(Demick)이 쓴 '부러울 게 없다'(Nothing to Envy)이다. 탈북자들을 인터뷰해서 썼다는 설명에 이끌려 심사위원장이 밝힌 수상 사유를 읽다가 북한을 보는 서방의 시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이 작품을 선정한 이유를 다소 문학적으로 표현했다. 논픽션에 걸맞게 '생생한 사실'을 썼다는 것보다, "작품을 읽고 믿을 수 없었다"며 책이 준 충격을 강조한 것이다.

데믹은 탈북자 6명과 가진 인터뷰를 토대로 북한 주민들의 삶에 대해 썼다. 인터뷰에 응한 탈북자 중 두 명은 청진에서 10년 동안 사랑을 키워온 연인 사이였지만 "북한을 탈출하기 전에는 정부에 대한 비판을 연인에게 털어놓는 것조차 두려웠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증언자인 노동자 여성은 가족과 함께 북한을 탈출하다가 자기 눈앞에서 남편과 아들이 굶어 죽은 끔찍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국민은 굶어 죽든 말든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일찍이 유례가 없는 3대 세습을 추진하는 북한 정권의 행태는 서구 지식인들의 우려 대상을 넘어 이제 창작의 소재로 떠오르고 있다. 북한 이전에도 국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부도덕한 국가 권력은 늘 작가들의 창작욕을 자극해 왔다. 옛 소련의 파스테르나크와 솔제니친은 전체주의 국가의 인간성 억압을 고발하는 작품을 썼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헤르타 뮐러도 차우셰스쿠 치하 루마니아 공포 정치의 실상을 세계에 알렸다. '부러울 게 없다'의 올해 새뮤얼 존슨상 수상은 전체주의 국가의 모순과 공포에 대한 서구 문학·출판계의 관심이 북한으로 옮아가고 있다는 증거로 읽을 수 있다.

소설가 김영하씨의 장편 '빛의 제국'에 쏟아지고 있는 유럽과 미국 문단의 관심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빛의 제국'은 남파된 후 북한으로부터 버림받자 한국 사회에 적응해 살아가던 전직 고정간첩이 북으로부터 "공화국(북)으로 돌아오라"는 뜻밖의 지령을 받은 뒤 겪는 내면의 갈등을 다뤘다. 지난해 초 프랑스에 소개될 때 르 몽드 등 주요 일간지의 주목을 받았고, 리베라시옹은 김씨를 직접 인터뷰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공화국이 당신을 부른다'(Your Republic Is Calling You)라는 제목으로 오는 9월 미국에서 출간되는 이 작품을 지난 2일자 신문에 비중 있게 소개했다.

데믹은 자기 작품의 제목을 '우리는 세상에서 부러울 게 없어요'(We have nothing to envy in the world)라는 북한 동요(童謠)에서 따왔다고 했다. 북한 현실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이 동요가 책 제목에도 활용된 것이다. 북한이라는 어이없는 체제가 존재하는 한, 작품 소재를 찾아 방황하는 작가들이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듯하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의 3남 김정은의 후계 작업을 진행 중인 북한 지도부 홍보자료에 '위원장 동지의 현장 지도 준비를 위해 김정은이 미리 나타났더니 비가 멎더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고 한다. 이 '소재'를 활용한 작품을 읽을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