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국·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

지난 6월 30일 일본의 한 방송사 중견 PD가 한국문화재 반환에 대한 다큐제작을 위한 사전 조사차 방한하였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내 사무실을 찾아온 그 PD는 다큐제작 동기를 묻는 나에게 "올해 이집트에서 열린 '문화재 보호 및 반환을 위한 국제회의'로 일본도 피해갈 수 없을 것 같다. 한국문화재 환수 운동을 일본 국민들에게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최근 일본 정부는 중(衆)의원에서 답변을 통해 일본 궁내청이 소장한 책 중에는 조선총독부에서 이관된 것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기도 했다. 일본에서 한국문화재 반환에 대한 인식 변화가 느껴지는 사례들이다.

1994년 독일이 2차 세계대전 때 약탈해간 문화재를 프랑스에 반환한 것을 비롯해 영국·미국·이탈리아 등이 원래 소유국에 문화재를 반환하기도 했다. 2008년 중국은 도난됐던 문화재 156점을 덴마크로부터 돌려받기도 했다.

최근 일본 궁내청 왕실도서관인 서릉부(書陵部)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왕실 도서의 반환 문제가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올해는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에 올 초부터 우리 국민들은 일본 서릉부에 있는 조선왕실의 전적(典籍)문화재 반환에 큰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반환 대상으로 거론되는 것은 조선총독부에서 기증한 것과 제실(帝室)도서(왕실의 각 기관에 있던 책을 모아 만든 작은 도서관) 소장본 그리고 경연(經筵·왕의 교양을 위한 강의) 소장본 등이 있다. 조선총독부가 1922년 조선왕실 도서관인 규장각에 있던 책들을 기증이란 이름을 빌려 일본에 넘긴 것엔 가례도감의궤 등 80여종이나 된다. 의학서 '세의득효방(世醫得效方)'처럼 '제실도서지장(帝室圖書之章)'이란 직인이 찍혀 조선 왕실소유가 명백한 책들도 375권이나 된다. 임금을 위한 경연에 사용했던 책 중 일본이 갖고 있는 '통전(通典·중국 제도사 백과사전)'은 11세기 고려 숙종 때 것으로 보물급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궁내청 서릉부 책 중에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희귀한 것이 많다.

일본에는 이외에도 회화나 불상·탱화·탑 등도 귀중한 한국 문화재가 많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일본에 있는 한국 문화재는 모두 일제강점기에 약탈당한 것이란 인식이 일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일본에 있는 한국문화재 모두가 약탈문화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고려대장경처럼 왜구의 침탈을 막기 위해 우리가 일본에 선물한 것도 있고,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구입해간 것도 많다.

그러므로 해외에 있는 한국문화재 모두가 환수 대상은 아니고 환수만이 능사도 아니다.

20년 동안 해외에 있는 한국문화재 실태 파악 조사에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일방적 환수운동은 우려되는 바가 있다. 각국이 나름의 인연으로 소장하고 있는 한국 문화재가 당사국과 문화재를 통한 문화교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실태조사와 연구가 선행돼야 하고 전담연구기관도 설립되었으면 한다.

한국의 문화재는 우리 선조들이 오랜 세월 동안 살아오면서 지녔던 높은 안목으로 창출한 전통문화의 결정체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의연하게 국가의 품격(品格)을 고려하면서 문화재 반환 교섭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