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진 산업부 기자

"외교통상부가 외교관이 아닌 민간인 과학자의 국제기구 진출에는 관심조차 없으니, 우리는 언제 일본처럼 국제과학기구의 수장(首長)을 맡을 수 있을지 답답합니다."

지난달 말 약 18조원이 투입되는 차세대 에너지 개발 프로그램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사무총장으로 일본의 모토지마 오사무 박사가 당선됐다는 소식을 접한 한 원로 과학자의 푸념이다.

오사무 박사의 ITER 사무총장 선출로 일본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국제에너지기구(IEA) 등 주요 국제과학기구의 사무총장 자리를 싹쓸이했다. 3개 기구 모두 에너지와 관련된 국제과학기구여서 '일본=에너지 강국(强國)'이라는 국제적 이미지도 굳혔다.

이런 성과는 공짜로 얻어진 게 아니다. 일본 정부 주도로 자국 과학자의 해외 영향력 확대를 적극 지원한 덕분이다. 실제 핵융합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이 유력한 오사무 박사의 ITER 사무총장 당선을 위해 일본 외무성은 수년 전부터 스웨덴 국왕과의 식사 자리를 주선하는 등 자기 일처럼 뛰었다. 외교관들이 노벨상 수상 후보자로 꼽히는 일본 과학자들의 성과가 나올 때마다 스웨덴 학계에 적극 홍보한 것은 기본이다.

이뿐만 아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이화학연구소(RIKEN),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 등은 1인당 연간 수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독일·영국·스웨덴 등의 석학들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놓고 있다. 모두 정부 주선으로 과학의 국제화를 겨냥한 조치다. KAIST의 한 중견 과학자는 "2000년대 들어 일본인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8명이나 나온 데는 일본 정부의 이런 체계적인 지원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말했다.

작년 말 UAE 원전 수주처럼 노벨상 수상이나 국제기구 사무총장 당선 같은 사안은 민·관이 합심해 총력을 쏟아도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다.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과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민간 과학자의 해외 진출 지원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

["과학기술 1위 한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