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발표된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의 담화는 식민지 지배의 '강제성'을 처음 인정했다는 점에서 역대 일본 총리들의 식민 지배 사과와 차별성을 두고 있다. 그러나 간 총리는 담화에서 "식민 지배가 한국인의 뜻에 반해 이뤄졌다"고는 했지만 1910년 강제병합조약과 그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강제성은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논란의 핵심인 1910년 조약의 불법성에 대해선 두루뭉술하게 비켜 간 것이다.

첫 강제성 인정

역대 일본 총리의 담화 중 가장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받은 1995년 무라야마 담화는 '역사의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통절한 반성의 뜻과 진심으로 사죄의 뜻을 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의 표현에서 가장 높은 수위였지만 식민 지배가 강제적으로 이뤄졌고 이 때문에 당시 대한제국과 일본이 체결한 병합조약에 무효라는 표현은 없었다. 이후 2005년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한·일 공동선언이나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담화에서도 '통절한 반성'이란 무라야마 담화의 레토릭(rhetoric)만 반복됐을 뿐 역사적 맥락과 식민 지배의 강제성은 거론되지 않았다.

그러나 간 총리는 이날 담화 여러 곳에서 식민 지배의 강제성을 언급했다. 단 1910년 조약의 불법성을 언급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회적인 방법이었다. 간 총리는 3·1운동을 '격렬한 저항'으로 표현하면서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해 이뤄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또 "아픔을 준 쪽은 잊기 쉽고, 받은 쪽은 이를 쉽게 잊지 못한다"며 자신들이 가해자(加害者)라는 점도 인정했다. 연세대 김상중 교수는 "일본의 주류(主流)는 지금도 한국에 대한 식민 지배보다는 자신들이 2차 대전의 피해자라는 인식만 가진 상황에서 식민 지배가 강제적이었다는 정권의 인식이 공식 표명된 것은 진일보한 것"이라고 말했다.

병합조약 불법성은 회피

우리 정부와 전문가들은 간 총리가 강제 병합의 강제성 부분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언급하느냐를 주목하고 있었다. 일본 입장에선 자신들의 법과 조약체계를 부정하는 위험성 때문에 1910년 강제병합조약을 '불법'으로 인정하긴 어렵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1904년 한일의정서,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강제병합조약으로 이뤄지는 일련의 과정이 한국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강제적으로 이뤄졌다는 부분만 인정한다면 간접적으로 식민 지배의 불법성도 인정한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간 총리는 이 부분을 피했다. 예를 들어 독도문제와 관련, 일본은 1905년 독도를 일본에 편입한 결정의 근거로 대한제국의 재정권과 외교권을 박탈한 1904년 8월 1차 한·일협약을 들고 있다. 일본이 1904~1910년에 이르는 식민지 편입 과정의 강제성을 인정하게 되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의 근간들이 흔들릴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간 총리는 이번 담화에서 1910년 강제 병합 이후의 36년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만 '한국인의 뜻에 반해 이뤄졌다'는 표현을 쓴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 이종국 박사는 "병합조약의 불법성을 인정하기 어렵더라도 을사늑약 등 병합에 이르는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는 건 인정해야 했다"고 말했다.

일본 정치의 현실

그러나 간 총리의 담화 내용이 다소 미흡하더라도 현재 일본 정부가 처한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 인정할 부분이 많다는 분석도 있다. 간 총리는 지난달 참의원 선거에서 패했고 다음 달 민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있다. 야당인 자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한국에 지나친 사과를 하면 안 된다'는 압박을 받고 있었다. 국민대 이원덕 교수는 "한국 입장에선 아쉽지만 간 총리는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고 이번 담화를 발표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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