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9년 남양주 퇴계원 고향에서 개인사업을 하던 민경조(54)씨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의정부에서 탈춤·사물 등 전통예술 분야에 몸담고 있던 김봉준(44)씨였다. 그는 "문헌에만 등장하는 퇴계원 산대놀이의 흔적을 찾으러 왔다"고 했다. 경희대 국문과 재학시절 민속학을 공부하며 탈춤반에서 송파 산대놀이도 경험한 민씨의 열정이 깨어났다. 명맥이 끊긴 고향의 전통연희를 복원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두 젊은이는 의기투합했고 그뒤 20년 동안 복원과 전승에 매달렸다.

1930년대 이후 사라져

경기도는 최근 퇴계원 산대놀이를 무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했다.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인 양주 별산대놀이나 송파 산대놀이 등과 다른 고유의 지역적 특성을 갖추고 있고, 조선시대 교통과 상업 중심지였던 퇴계원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퇴계원 산대놀이 보존회' 회장과 총무를 맡고 있는 두 사람의 관심과 노력이 없었다면 퇴계원 산대놀이는 다시 사람들 앞에 등장하지 못했다.

'퇴계원 산대놀이'에 등장하는 노장과 취발이 차림으로 얘기를 나누는 민경조 회장(왼쪽)과 김봉준 총무. 두 사람은 20년간 퇴계원 산대놀이 복원에 매달려 경기도 무형문화재 지정을 이끌어냈다.

퇴계원은 강원도와 함경도의 물자가 서울로 들어가던 통로였다. 왕숙천을 끼고 여관·음식점·푸줏간 등이 즐비했다고 한다. 덕분에 1900년을 전후해 매년 몇차례씩 모래밭에서 산대놀이가 펼쳐졌다. 퇴계원 산대놀이는 양주 별산대놀이에서 배워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1930년대 이후 퇴계원 지역 경제의 쇠퇴, 일본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으로 중단됐다. 더구나 6·25 전쟁으로 마을이 잿더미가 돼 가면도 사라졌고, 산대놀이는 노인들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은 우선 민 회장의 부모, 동네 노인 등을 통해 실체 확인에 나섰다. 다행히 산대놀이를 잘 기억하고 있는 백황봉(1911년생)옹이 큰 도움을 줬다. 당시 경험도 들려주고 춤사위도 손수 보여줬다. 또 알음알음으로 과거 산대놀이에 참여했던 노인들을 찾아냈다. 대사를 채보하고 시연을 녹화하면서 고증과 복원을 거듭했다. 김 총무는 "민 회장은 복원 과정을 지휘하고 나는 기능이나 문헌을 연구하는 일을 주로 맡았다"고 말했다.

그 결과 1990년에는 전통 민속에 관심이 있던 20여명을 모아 보존회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복원에 나섰다. 전경욱 서연호 교수 등 전통연희 전문가들로부터 학술적 뒷받침도 얻어냈다. 1997년에는 서울대 박물관이 과거에 사용했던 탈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수장고에서 탈을 꺼내와 실측, 촬영하고 복원에 나섰다. 보존회 회원으로 조각을 하던 김기철(58)씨와 함께 안동 등 전국을 쫓아다니며 전문가들을 만나고 배운 끝에 제작에도 성공했다.

모두 12마당… 파계승 등 등장 현실 풍자

퇴계원 산대놀이는 보존회 결성 이후에 꾸준히 공연을 펼치고 다듬으면서 모습을 만들어갔다. 1990년대 중반에는 완성된 형태를 갖추고 전문가들의 인정도 받았다. 모두 12마당으로 파계승, 몰락한 양반, 만신, 사당, 하인 등이 등장해 현실을 풍자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앞뒤로 길놀이와 고사, 뒤풀이가 배치돼 있다. 1997년부터는 퇴계원면 복지회관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면서 전승 기반도 갖췄다. 남양주시나 지역 주민들의 도움도 컸다.

요즘도 회원 30여명은 주말에 모여 김 총무의 지도로 실력을 갈고 닦고 있다. 자영업, 개인택시 기사, 주부 등 다들 생업에 바쁘기 때문이다. 상설공연팀을 만들어 안정적으로 꾸려가는 것이 우선의 목표이다. 보존회는 그동안 정기공연·초청공연 등 200회 이상 공연을 펼쳤다. 매년 단오에는 퇴계원 초등학교나 중학교 운동장에서 정기공연을 갖고 있다.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 영월 단종문화제 등 전국에서도 초청받고 있다.

민 회장은 "춤사위를 배우는 과정이 쉽지 않고 오랜 세월이 걸리기 때문에 회원들의 열정이 없었다면 문화재 지정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더욱 기량을 연마해 퇴계원 산대놀이를 전승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김 총무는 "20년전이나 지금이나 자꾸 밀려나고 잊혀져 가는 전통 예술을 어떻게 보존하고 발전시킬 것인지 고민이 크다"며 "오히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