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자연과학의 주요 연구성과를 담은 대우학술총서를 발간하고, 국내외 저명학자를 초청해 석학연속강좌를 개최하는 등 '기초학문의 파수꾼' 역할을 해온 한국학술협의회(이사장 김용준)와 대우재단의 학술지원 활동이 30년을 맞았다. 협의회는 30주년을 기념하여 떠들썩한 행사 대신 대우학술총서 600권째로 '우리 학문이 가야 할 길'(아카넷)을 다음 주 발간한다.

대우학술총서는 1983년 '한국어의 계통'(김방한)이 첫 출간된 후 지금까지 인문학 219종, 사회과학 127종, 자연과학 208종, 다학제간(多學際間) 47종을 발간했다. 그 가운데는 '이슬람법 사상' '인도게르만어 지역의 분류' '수치천체물리학' '입자물리현상론' '한반도 식생사' '서양 고문서학 개론' '서양 고서체학 개론' '중국의 다구르어와 어윙키어의 문법, 어휘 연구' 등 이 기획이 아니면 빛을 보기 어려웠을 저서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동서양 고전을 제대로 된 번역서로 보급하자는 취지로 '대우고전총서'를 발간하기 시작해 '순수이성비판 1·2'(백종현 역) '소유란 무엇인가'(이용재 역) 등 24권을 냈다.

대우학술총서가 곧 600권을 돌파한다. 지금까지 출간된 총서를 모으니‘작은 산’이 생겼다.

기초학문 진흥을 위한 이 같은 노력은 출판계와 학계의 높은 평가로 이어졌다. 한국과학기술도서상('한국지질론'·1986년), 한국과학상 대상('소립자와 게이지 상호작용'·1987년), 한국출판문화상('홍대용 평전'·1987년), 가담학술상 번역상('마키아벨리 평전' '학문의 진보') 등을 수상했고, '한국의 풍수사상' 등 독자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책들도 나왔다.

30주년 기념 도서 '우리 학문이 가야 할 길'은 한국 학문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진로를 모색하고 있다. 인문·사회·자연과학의 분과 학문별로 전공 학자들의 진지한 고민을 담았다.

이태수(인제대·철학), 김광억(서울대·인류학), 김두철(고등과학원장·물리학) 등 원로·중진 학자들의 권두 좌담은 우리 학문이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옮겨가는 과정"이라고 진단한다. 이태수 교수는 "19세기까지 중국이라는 중심부의 언어(한문)로 학문을 해온 우리 학계가 20세기 들어 심각한 단절을 겪었으며, 학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다시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로 이제 겨우 50년 정도 흘렀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이들은 우리 학계가 이제 '천천히 다지기'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신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리고"(김광억), "성과만 쫓으면서 상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생력을 키우고 스스로 토대를 만들어 나가면서 연구를 해나가야 한다"(김두철)는 것이다.

한국학술협의회는 2000년부터 매년 가을 세계적으로 뛰어난 학문적 업적을 쌓은 석학을 초청해 학문적 성과를 직접 들어보는 '석학연속강좌'를 열고 있다.

대우재단·조선일보사와 함께 개최하는 석학연속강좌는 제1회 김재권 미국 브라운대 교수, 제2회 리처드 로티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를 시작으로 홀수해에는 국내 학자, 짝수해에는 외국 학자를 초빙해 전문가를 위한 세미나와 일반인을 위한 대중강좌를 병행하고 있다.

협의회는 또 2006년 12월부터 학계의 최근 동향을 전하고 학문 간의 공백을 메우는 데 중점을 두는 반(半)년간 학술지 '지식의 지평'을 발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