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세계정치

하영선·김상배 엮음|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 461쪽|2만2000원

국제정치를 설명하는 대부분의 교과서 첫머리에 등장하는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그리고 뒤늦게 나온 '구성주의' 국제정치학으로 국제정치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지났다. 현실주의는 국제정치에서 힘의 분배구조와 그 동학(動學)을 중심으로 국제정치를 이해한다. 자유주의는 국제규범이나 제도 등을 기반으로 국가 간 관계에서 선의의 협력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구성주의는 국제정치의 현실이 일방적으로 주어졌거나 영속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구성됐고 재구성될 것이라고 보는 데 특징이 있다.

하지만 국제정치의 현실이 복잡해지면서 이러한 기존 국제정치학들은 한계에 봉착했고 '복합(複合)의 국제정치'가 부상했다. 근대와 탈근대의 복합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본 21세기 세계정치는 행위자의 복합, 이슈영역의 복합, 권력게임의 복합, 활동공간의 복합 등 네 가지 층위에서 이해할 필요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네트워크 세계정치'는 이런 필요에 부응해 탄생했다. 이 책의 필자들은 한 가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21세기 국제정치의 주인공, 무대, 연기의 복합적 변화를 대변하는 것은 바로 국제정치의 네트워크화(化)라는 점이다. 이 책의 필자들은 그물망의 구조와 행위자라는 분석 틀을 활용하여 21세기 복합네트워크 세계정치를 설명한다.

책은 모두 3부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필자들이 다루는 주제는 네트워크 국제정치의 이론적 모색과 개념화에서 미국·일본 등 주요국들의 네트워크 전략, 그리고 금융과 환경, 시민사회 네트워크 등 구체적인 사례까지 다양하다.

지금까지 국제정치는 강대국 중심으로 다뤄져 왔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강대국 대 약소국, 혹은 약소국 대 약소국의 관계는 제대로 다뤄지기 어렵다. 하지만 국제정치를 네트워크적 시각에서 보면 크고 작은 행위자들의 설자리가 넓어진다. 거미줄이 복잡해지면 작은 행위자들도 거미줄 구조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으면서 동시에 거미줄을 복합적으로 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복합 국제정치학이 제시하는 세계상이다.

이 책의 작업에는 네트워크 이론을 수용하면서도 국제정치의 특수성을 놓치지 않으려는 필자들의 치열한 문제의식이 배어 있다. 사회학이나 물리학과 달리 국제정치학에서는 행위자들이 형성하는 네트워크만큼이나 국가라는 행위자들이 보유한 속성과 자원이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들은 네트워크의 개념을 권력이나 국가, 국제체제와 같은 기존 국제정치학의 개념들과 접맥하려는 시도를 펼치고 있다. 이러한 시도가 단순히 외래이론을 수입하는 차원을 넘어선다는 점이 이 책을 감상하는 또 다른 포인트이다.

사실 한국 같은 중견국의 시각에서 접근하면 똑같은 네트워크에 대한 논의라도 강대국이 펼치는 경우와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동아시아의 현실을 보면 네트워크로 대변되는 탈(脫)근대적 현실이 기존 국제정치의 근대적 현실을 대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새로이 부상하는 초국(超國)적 네트워크들의 활동과 이를 견제하려는 국가 행위자들의 네트워크 전략이 치열하게 경합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이 안고 있는 숙제도 만만치 않다. 첫째, 네트워크라는 렌즈를 통해서 보면 과연 무엇이 얼마나 다르게 보이는지에 대한 좀 더 명쾌한 대답이 아쉽다. 현재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쟁점들에 대해 네트워크의 시각은 얼마나 기존 시각과 차별화된 설명이나 해석을 내놓을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시원한 답을 내놓으려면 네트워크의 이론과 방법론에 대한 좀 더 본격적인 천착이 필요하다. 사실 네트워크 이론을 원용하는 작업의 매력은 다양한 행위자들이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구조'를 드러내는 데 있다. 이는 국제정치 분야의 이론화가 안고 있던 오랜 숙제인 행위자와 구조를 모두 담는 이론의 개발로 통한다. 그러나 이 책의 경험적 작업들은 여전히 행위자 차원에서 파악된 네트워크 전략을 분석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둘째, 국제정치학이 갖는 실천적 성격에서 제기되는 '처방'의 문제이다. 현실주의자들은 힘을 기르든지 동맹을 맺으라는 처방을 내릴 것이다. 제도주의자들은 국제기구나 레짐을 강화하자고 주장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역설하지만 정작 그 네트워크를 강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제시하지 않는다. 이번 책의 부제는 '은유에서 분석으로'이지만, 다음 책은 '분석에서 처방'으로 관심의 영역과 분석의 수준이 심화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