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쇼트트랙이 딴 금메달이 무려 19개다. 분명 '효자(孝子)' 소리를 들어 마땅할 이 종목이 '복마전(伏魔殿)'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이유는 끊임없이 터지는 승부 조작 때문이다.

밴쿠버올림픽 직후 대표팀 내부에서 승부 조작이 밝혀지더니 최근 경찰 수사에선 올 3월 성남시장배 전국중·고대회에서도 코치들이 승부 조작을 한 게 드러났다. 그 실체를 보면 쇼트트랙은 스포츠가 아닌 '야바위'판 같다.

남고부 승부 조작엔 선수를 출전시킨 코치 14명 전원이 가담해 가위바위보로 등수를 미리 정해놨다. 92년 알베르빌올림픽 금메달 이준호(45)가 담합을 주도했고 송재근(36), 이호응(32) 등 전·현직 대표팀 코치들이 가세했다.

더욱이 이호응은 2010~11시즌 대표팀 선임코치였다. 그는 이 사건 직후 코치에서 물러났다. 쇼트트랙은 그동안 사고의 지뢰밭이었다. 2004년 여자 대표들이 코치들의 구타에 반발해 태릉선수촌을 이탈했다.

2006 토리노올림픽을 앞두고는 한체대와 비(非)한체대 간 파벌 다툼으로 대표팀이 둘로 쫙 갈려 따로 훈련하는 촌극을 벌였다. 4월 대표팀 내 승부 조작 파문이 불거졌을 때는 선수, 코치, 학부모, 연맹 관계자들이 서로를 비난했다.

한마디로 '막장 드라마'였던 것이다. 왜 쇼트트랙에선 이런 일들이 끊이지 않을까. 쇼트트랙 선수는 대개 개인 코치에게 훈련을 받는다. 링크 수가 한정돼 있어 학교나 팀보다 어느 코치에게 배우느냐가 더 중요하다.

올해 불거진 승부 조작 파문도 그랬다. 밴쿠버올림픽에 출전한 이정수(단국대)와 곽윤기(연세대)는 소속 학교는 다르지만 둘 다 전재목(37) 코치에게 사사(師事)를 한 동료이기 때문에 선발전 때 협력이 가능했던 것이다.

개인 코치는 가르치는 선수가 많을수록 쇼트트랙계에서 '목소리'가 커지고 수입도 는다. 학생 수를 늘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적이다. 대표를 배출하거나 대학에 많이 보낸 코치일수록 명성을 얻고 학부모들이 따른다.

성남시장배에서 코치들이 대학 입시를 앞둔 고3 선수들을 밀어주기로 담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쇼트트랙에 승부 조작이 잦은 건 종목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쇼트트랙은 기록이 아닌 순위 싸움이다.

남보다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면 그만이기에 같은 편끼리 짜고 경쟁자를 견제할 수도 있다. 좁은 링크에서 몸을 부대끼며 달리기에 몸싸움도 빈번하다. 승부 조작에 협조하지 않으면 레이스 도중 해코지해도 증거가 남지 않는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잇단 승부 조작에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4월 대표팀 승부 조작 파문에 대한 책임으로 집행부 전원이 사퇴한 빙상연맹은 대표 선발전 때 타임 레이스(일정 구간의 기록으로 순위를 매기는 경기방식)를 도입했다.

그런데도 파문이 일자 이치상 사무국장은 "경찰 수사가 끝나는 대로 상벌위를 열어 해당 코치를 징계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빙상인들은 "유능한 코치 수가 빤하기 때문에 언 발에 오줌 누기 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