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6살 때 군대에 입대해 말레이 반도의 정글에서 일본군과 용감히 싸웠다.”

2차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쟁포로로 잡혀 고문까지 받았다고 50여년 동안 거짓말을 해온 80대 호주 남성이 결국 사기죄로 징역형을 살게 됐다. 전쟁영웅 행세를 하고 싶었던 그는 호주의 전쟁포로전우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21일 호주에 사는 아서 크레인(Crane·84)이 2차 대전에 참전했던 전쟁포로 출신이라고 거짓말을 해서 보훈연금까지 받아챙긴 죄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고 전했다. 그가 어찌나 거짓말을 교묘하게 잘 꾸며냈던지 주위 사람들뿐 아니라 다른 참전용사들과 호주 정부까지 속일 수 있었다. 크레인은 20여년간 약 70만호주달러(약 8억원)의 군인연금을 챙겼다.

50년동안 가짜 전쟁영웅 행세를 했던 아서 크레인

그가 이처럼 감쪽같은 거짓말을 생각해낸 것은 1960년대 한 술집에서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의 전쟁포로가 됐던 한 참전용사의 무용담을 전해들었을 때였다. 크레인은 이후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사실은 참전용사였다는 식으로 가볍게 거짓말을 하다가 점점 거짓말의 스케일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984년 퀸즐랜드주로 이사한 그는 그곳에서 만난 참전용사들에게 가짜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16세 때 영국군으로 참전해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말레이 반도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다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혀 고문과 강제노동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를 지어낸 것.

크레인의 이야기에 홀린 참전용사들은 그에게 군인연금을 신청할 것을 권유했고, 호주 전쟁포로전우회 회장까지 역임했다. 호주 각지를 돌며 자신의 포로 체험을 기초로 한 안보 강의까지 했다.

하지만 결국 거짓말은 들통났다. 그의 강의를 들으러 왔던 군사역사가 리넷 실버(Silver)가 크레인의 이야기에서 모순점을 찾아낸 것.

관련 기록을 뒤진 실버는 크레인이 복무했다고 주장하는 영국군 부대에 그에 관한 기록이 없음을 발견했다. 크레인은 즉시 사기죄로 기소됐고 재판 과정에서 전쟁포로는커녕 군대에 복무한 적도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6세 때 그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크레인의 재판을 맡은 마샬 어윈(Irwin) 판사는 “크레인은 돈이 아니라 영웅이라는 명예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고 전했다. 크레인은 4년형을 언도받았지만, 고령인 점을 감안해 6개월 뒤 모범수로 풀려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