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은평구 응암초등학교. 방과 후 시간이지만, 교실 한 곳엔 스무 명 남짓한 1학년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선생님이 읽어준 '선녀와 나무꾼' 동화를 듣고 스케치북에 색칠을 하던 채연(가명·7)이는 "선녀가 목욕을 하는데 나무꾼이 옷을 훔쳐 가려고 나무 뒤에 숨어 있어요"라며 자기가 그린 그림을 이야기했다.

옆 교실에선 2학년 아이들이 자유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서 블록으로 헬리콥터를 만드는 아이, 소파에 앉아 '솥 안에 든 거인'이라는 그림 동화책을 읽는 아이도 보였다.

응암초는 2009년부터 1·2학년 어린이 24명을 대상으로 이러한 '엄마품 돌봄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돌봄교실이란, 퇴근 시간이 늦은 부모를 대신해 학교가 평일 방과 후에 아이들을 맡아 점심·저녁 식사를 주고, 퇴근한 부모가 아이를 데리러 오기 전까지 보육 전담 교사가 아이들 숙제를 지도하거나 국어·수학 등 학과 공부도 돌봐주는 곳을 말한다. 학기 중은 물론, 여름·겨울 방학 때도 일부 운영한다.

◆내달부터 밤 10시까지 돌봄교실 운영

저소득층 가정을 우선 지원 대상으로 하는 엄마품 돌봄교실은 일부 교육감들이 추진하는 '무상급식'에 대해 현 정부가 대항카드로 내세운 맞춤형 교육복지정책 중 하나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저소득 맞벌이 부부의 가장 큰 고민은 아이들 육아 문제"라며, "학교가 보육교사를 채용하고, 학생들에게 밥을 주는 건 물론 교육·보육 프로그램까지 운영하겠다"고 밝혀왔다.

현재 돌봄교실을 운영하는 초등학교는 전국에 6200곳. 하지만 99%가량이 저녁 7~8시까지만 운영돼 퇴근 시간이 늦거나 근무 시간이 불규칙한 저소득층 부모들이 이용하는 데 불편한 점이 많았다.

서울 응암초등학교에서 운영하는 ‘엄마품 돌봄교실’에서 어린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다. 늦게 퇴근하는 맞벌이 부부와 저소득층 가정을 위해 밤 10시까지 문을 여는 돌봄교실의 서비스가 전국 536개 초등학교에서 다음 달부터 시작된다.

교과부는 이런 단점을 보완해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부터 돌봄교실 운영시간을 밤 10시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밤 10시까지 문을 여는 돌봄교실은 우선 전국 50개 안팎 시·군·구에 536개 초등학교를 선정했다. 전국 5854개 초등학교의 약 10%가 사실상 온종일 돌봄교실 서비스를 하는 셈이다. 그동안 저녁 7~8시까지 운영해온 6200곳 중에서 536곳을 선정했으며 나머지 돌봄교실은 그대로 운영된다. 정부는 온종일 돌봄교실 서비스를 하는 곳을 계속 늘려나갈 예정이다.

저녁 7~8시까지 하는 서비스는 간식비·저녁 식사까지 포함해서 월 6만~10만원의 이용료를 받는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등 저소득층 아동은 정부 지원을 받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밤 10시까지 하는 온종일 돌봄교실 이용료도 비슷한 가격대이며, 저소득층은 무료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보육·교육도 학교가 책임져

엄마품 돌봄교실은 방과 후 부모가 하는 보육역할을 학교가 대신해 주는 개념이다. 예컨대 수업이 끝난 후 친구들이 귀가한 후에 학교는 돌봄교실에 남은 아이들에게 점심 식사와 간식을 제공하고, 책읽기·글쓰기·산수 등을 가르친다. 보육교사 2~3명이 아이들 숙제도 돌봐준다. 전은이 응암초 보육교사는 "아이들이 혼자 있으면 인터넷 게임에 빠지거나, 숙제를 게을리 하는 경향이 있는데 돌봄교실에선 선생님들이 늘 옆에 붙어 있으니까 그럴 위험이 없다"고 말했다.

'보육+교육' 역할을 하기 위해 엄마표 돌봄학교는 학교 구조도 기존의 학교와는 다르다. 일반 교실 두 개 크기 공간을 터서 학생들이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과 단체 공부방, 몸이 안 좋은 아이들이 잠시 쉴 수 있는 간이 침실을 갖췄다.

교과부 관계자는 "엄마품 돌봄교실은 여유 있는 가정 자녀까지 공짜로 급식을 제공하겠다는 무상급식 제도와 달리 꼭 필요한 계층에 꼭 필요한 교육복지 서비스를 제공해 효과적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