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회비 350만원! 이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고 당신은 기꺼이 '목수'가 되겠는가. '웬 미친 소리?' 하겠지만, 이 정도 목돈을 주고 육체노동, 일명 '노가다'의 땀과 고통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명품' 목공소 얘기다. 4~5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DIY(Do it yourself)' 목공 바람이 비즈니스맨, 혹은 전문직 종사자들의 고급스러운 취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제 골프는 갔고 목공이 대세"라고 단언하는 남성들도 있다.

골프는 한물가고 목공이 대세?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 자리한 '더 우드 스튜디오'. 조남룡·허호·김명성 등 목공의 매력에 빠진 중견 사진작가 셋이 의기투합해 2005년 문을 연 목공소다. 이곳은 '연회비'를 받는 럭셔리 공방으로 DIY업계에 유명하다. 젊은이들 사이엔 '영화배우 강동원 목공소'로 이름이 더 알려져 있다. 실제로 강동원은 지난해 12월 공익근무를 하기 전까지 촬영 틈틈이 이곳을 찾아 나무를 깎았다.

“나무에게서 위안을 받지요.” 목공소 ‘더 우드 스튜디오’의 단골 멤버들. 최근 들어 월(月)회원제도 부분적으로 실시하면서, 주말이면 20대 직장인들도 목공소를 찾아온다.

20여명 회원들 대부분이 의사·회계사·세무사·교수·디자이너·호텔리어 등 중년의 전문직 종사자나 중소기업 CEO들이다. 3년차 베테랑 목수인 사업가 김태길(59)씨는 서울 삼성동에서 일주일에 두세 번 목공소를 찾는다. "여행·등산·낚시 안 해본 취미생활 없지요. 그런데 목공 만한 게 없습디다. 골프도 건강엔 좋지만, 육체노동의 대가로 얻는 생산물이 당장 눈앞에 놓이는 목공의 희열엔 비할 수가 없지요."

골프 대신 목공에 연회비를 투자하는 이곳 회원들은 다른 공방들처럼 제2의 직업, 혹은 생업을 목표로 나무를 깎는 게 아니다. 그들은 '목공이 갖는 심리치료 효과'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나무가 주는 관용, 위안이라고 할까요. 나무의 따뜻한 촉감, 가공할 때 번지는 향기, 2~3㎜ 틀려도 대충 맞춰 끼울 수 있게 배려하는 나무의 미덕에 숨통이 확 트이는 걸 느끼지요." "우리 일과라는 게 얼마나 기계적이고 빡빡합니까. 나무먼지, 톱밥을 뒤집어쓴 채 무아지경으로 나무를 깎고 땀을 흘리다 보면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정결해지지요." 조남룡(52)씨는 "머리로만 살아가는 최첨단 시대에 몸을 혹사시키면서 얻는 쾌감, 성취에 목공의 마력(魔力)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플러스 알파'는 인맥

더 우드 스튜디오의 또 다른 특징은 강의 위주 교육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명성(49)씨는 "한마디로 어른들을 위한 즐거운 목공 놀이터"라고 말했다. 이론 강의가 따로 없이 첫날부터 실기로 직진한다. 가르치는 사람, 배우는 사람이 따로 없다. '고참' 회원들이 나무 다루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배우고, 베테랑이 신입회원에게 톱질과 대패질의 시범을 보이는 식이다. 일주일에 4일간 자유롭게 목공소를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연회원 목수들의 이점.

연회비로 목공소를 운영하는 이유에 대해 조남룡씨는 "배타성 때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진짜 목수 일이 좋은 사람, 나무를 통한 창작의 기쁨을 진심으로 즐기면서 오랜 교류와 친분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게 좋다고 생각했지요."

회원들 또한 연회비가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목공 이외의 '플러스 알파'가 있기 때문. 바로 인맥(人脈)쌓기다. 서울 송파에서 갤러리 아트숍을 운영하는 김상일(39)씨는 "단순히 나무만 깎는 게 아니다"고 말한다. "여기 와서 처음 만난 분들이지만, 저로서는 인생 선배들이라 비즈니스 노하우부터 삶의 지혜까지 배우는 게 너무나 많습니다. 제가 전혀 몰랐던 분야에 대한 지식도 얻고요. 결국은 사람 아닙니까?"

공사장 인부들처럼 '작업'이 끝나면 목공소 인근 밥집에서 술 한잔 기울이는 재미도 일품. 이들의 '로망'은 자기만의 공방, 목공놀이터를 갖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