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3시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

카키색 수의를 입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과 하늘색 수의를 입은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가 차례로 법정에 들어섰다. 두 사람의 오른쪽 가슴에 수인(囚人)번호가 선명했다. 검사의 공소 사실 설명이 끝나고, 재판장인 김형두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장이 박 교수에게 먼저 모두(冒頭) 진술 기회를 줬다.

"박명기 피고인, 할 얘기 있으면 하시죠." 박 교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모두 진술 기회는 곽 교육감에게 넘어갔다. "지독한 오해의 수렁에 빠져 있지만 내 양심이 알고 하늘이 알고 있습니다. 나는 정말로 (선거 비용 보전 사전 약속을) 몰랐습니다." 곽 교육감이 말을 이어갔다. "2억원이 어떻게 선의의 부조(扶助)냐는 수군거림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게 진실입니다."

17일 서울 중앙지법 311호 법정에서 곽노현 교육감·박명기 교수의 첫 공판이 열렸다. 김형두 재판장(왼쪽 맨 위)의 질문에 곽노현 교육감(아래 오른쪽 두번째)이 마이크에 대고 답하고 있다. 곽 교육감 옆 테이블에는 같은 수의 차림의 박명기 교수가 앉아있다.

듣고 있던 박 교수가 "따로 준비하지 않았지만…" 하며 발언을 신청했다. "강경선 교수(곽 교육감의 친구·불구속 기소)에게 도와주려면 많이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강 교수는 인격자인데 미안하고… 곽 교육감이 직무 수행을 못 하게 돼 죄송합니다. 곽 교육감이 마련한 돈을 받은 게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면 재판장님의 뜻에 따를 것입니다."

피고인들의 모두 진술이 끝나자 재판은 본격적인 공방으로 접어들었다. 곽노현·박명기 두 사람이 기소된 선거법 232조 1항 2호가 핵심 쟁점이었다. 이 조항은 선거가 끝난 후 후보였던 사람에게 대가성 금품을 주는 행위를 처벌하게 돼 있다.

공방에 불을 붙인 건 재판부였다. 김 부장판사가 "변호인, 피고인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라며 미리 인쇄해 둔 국내 선거법 교과서 3종과 일본의 선거법 교과서 1종,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문을 검사와 변호인, 피고인에게 돌렸다. 변호인들이 피고인들의 모두 진술이 있기 전에 "(선거 당시 금품 수수) 약속이 없었다면, 나중에 돈을 줬어도 대가성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 뒤였다.

▲김 부장판사: "제시한 교과서들과 판례 모두 '후보 사퇴의 동기가 이익을 준 것과 무관하더라도 추후 대가를 제공한다면 유죄가 성립한다'고 해석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재협 변호사(박 교수 변호인): "적어도 투표 종료일(작년 6월 2일)까지 이익 제공 약속이 있어야 232조 1항 2호를 적용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김칠준 변호사(곽 교육감 변호인): "검찰은 사전 합의 부분에 대해 영장, 공소장에 정확히 적지 않았는데 설명해주십시오."

▲송강 공안1부 검사: "검찰은 교과서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검찰과 변호인이 설전(舌戰)을 이어가자, 김 부장판사는 "(재판에서) 교과서대로 해석하겠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사전 약속이 없었다면 죄가 안 된다는 식으로 변호인들이 법 조항을 해석하는데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핵심 쟁점은 2억원에 대가성이 있었는지 여부"라고 말했다. 재판부가 법정(法廷)에서 법학 교과서를 피고인(변호인)과 검찰에 제시하는 것은 보기 드문 장면이다. 피고인 가운데 곽 교육감과 강 교수는 법대 교수이기도 하다. 유·무죄는 물론 법 해석론을 놓고 검찰과 변호인의 공방이 과열되는 것을 막고, 핵심 쟁점을 미리 환기하려는 재판부의 의도로 해석됐다.

2시간 30분가량 진행된 재판이 끝나자 박 교수는 강 교수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그러기 위해선 곽 교육감 앞을 지나가야 했지만,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다음 달 1일 열리는 다음 재판에서는 증인신문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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