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 정·산업부 차장

우리가 스스로 비판하는 것을 밖에선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교육열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만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 오사카지사는 교육열을 배우기 위해 작년 한국을 방문했다. 그가 견학한 곳에는 외국어고도 있었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이 정도의 어학 실력을 갖춘 학생이 한 학교에서 한 해 400명씩 나오는 게 한국이 약진하는 계기"라고 했다. 얼마 전 인터뷰를 한 다케다약품 사장도 "풍요에 젖은 일본 젊은이는 영어는커녕 일본어조차 이상하게 하는데, 한국 젊은이들은 영어는 기본이고 일본어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한국 대학에서 인재를 뽑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푸념이었다.

외국인이 사정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려니 여길 수도 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일본도 교육 광풍(狂風)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한국을 부러워하는 것은 강요든 뭐든, 결과로 나타나는 학생들의 학습열과 성취욕이 아닐까 한다. 한국 젊은이들을 보면 풍요 속에서 성취욕을 상실해가는 물렁물렁한 일본 젊은이들이 정말로 못마땅한 것이다.

지난 3월부터 보육원에 다니기 시작한 우리 집 세 살 꼬마는 요즘 "많이, 많이 윤(자기 이름)이 꺼" "윤이가 일등"이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보육원 형들에게 배운 모양이다. 이런 아이에게 "아니야, 콩 한 알이라도 나누고 늘 양보해야 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기적이고 못된 아이가 되라는 뜻이 아니다. 한국이 발전 과정에 있는 이상, 획득하려는 소유욕과 앞서가려는 성취욕이 여전히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한국은 지금 너무 감상적이다. "아이들에게 눈칫밥을 먹일 수 있는가"라는 상투적 구호가 "이건희 회장 손자까지 공짜밥을 줘야 한다"는 논리로 쉽게 비약한다. 동심을 어루만지기 위해선 수조원도 투입할 수 있는 통 큰 나라가 됐다. 한국이 선진국이라면 물론 이보다 좋은 일이 없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나라다. 과거 20년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20년도 성취하려는 젊은 프런티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나라를 성장시키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래서 공짜밥에 서러운 아이들에게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솔직할지 모른다. "네가 살아야 할 자본주의는 그런 것이야. 설움을 발판으로 성공해서 너 같은 아이에게 빛을 전해 주렴"이라고. 그리고 그 아이들이 세상에 대비할 수 있도록, 부자에게 쓸 돈으로 학원 쿠폰을 사주는 것이 더 현명한 방식일 수 있다. 가난한 프런티어의 앞길을 막는 장애를 무너뜨리고 성공의 사다리를 세우는 것이 더 정당할지 모른다. "이건희 손자도 공짜밥을 먹으니 이제 눈물을 닦으렴"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이들을 속이는 것이다. 공짜밥 정도에 눈물을 흘리면, 앞으로 세상에 나와 더 크게 울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외고를 비판하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왜 자녀를 외고에 보냈을까? 백 번을 양보해 출판사가 한 일이라고 해도, 왜 출판사는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에게 '서울 법대' 명찰을 달아준 것일까? 읽을 수도 없는 하버드대 도서관 장서 수백만권을 왜 전부 읽었다고 말한 것일까? 외고, 서울 법대, 하버드대…. 그들이야말로 속세에 완벽하게 충실한 것 아닐까.

물론 그들이 말하는 아름다운 세상은 올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방식대로는 오지 못할 것이다. 지금 눈칫밥을 참고 극복하는 젊은 프런티어가 치열하게 개척하는 미래일 것이다.

[복지에 취한 유럽… "개혁하라 아니면 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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