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와 대우재단, 한국학술협의회는 헬라스(희랍) 사상 연구와 플라톤 원전의 역주작업에 전념해온 박종현(77) 교수(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를 초청, '제13회 석학 연속 강좌'를 갖는다. '지혜 사랑과 삶의 지혜'를 주제로 강연하는 박 교수는 헬라스인들이 남긴 정신적 자산의 핵심을 소개할 예정이다. 연속 강좌에 앞서 박종현 교수가 김영균(54) 청주대 교수(문화철학과), 강상진(46) 서울대 교수(철학과)와 대담을 가졌다.

강상진 선생님께서는 수십년간 플라톤 원전을 번역하고 각주를 통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개척적 작업을 해왔습니다. 먼저 원전 번역의 사연부터 말씀해주시지요.

박종현 제가 원전 번역서를 처음 낸 것이 1974년이에요. 고전을 제대로 읽고, 제대로 알고, 그래서 어설프고 어중간한 지식에서 탈피하자는 것이었어요. "밑천이 든든하다"는 말을 흔히 하는데, 그런 작업 성과는 각 분야에 큰 밑천이 되겠죠.

‘2011 제13회 석학 연속 강좌’의 연사인 박종현 성균관대 명예교수(가운데)와 대담자인 강상진(왼쪽), 김영균 교수.

김영균 선생님께서 1997년에 플라톤의 '국가'에 대한 역주서를 낸 것은 당시 학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알고 있는데요.

'국가'의 출간은 플라톤의 원전에 대한 본격적인 역주 작업의 첫 걸음이었어요. 5~6년쯤 걸렸죠. 2005년엔 새 텍스트에 근거하여 대대적인 개역 증보판을 냈고요. 이후에 내가 계속해서 낸 플라톤의 역주서는 전집의 약 62%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주석을 대대적으로 단 것은 비록 우리가 일본보다 몇십년이나 늦게 플라톤의 번역서를 냈지만, 일본서 하지 않은 작업까지 한다는 생각도 했어요. 늦은 대신 제대로, 야무지게 하자는 생각이었죠.

◇적도, 중용과의 차이는 무엇

선생님께서는 고대 그리스를 나타내는 말로 '헬라스'를 사용하고 계신데요, 이렇게 표기하는 이유는 뭡니까.

그리스는 라틴어 그라이키아(Graecia)에서 유래된 말이죠. 페리클레스는 아테네를 '헬라스의 학교'라 말했습니다. 역시 비슷한 시기인 기원전 5세기의 헤로도토스도 그의 '역사'에서 헬라스를 헬라스인의 모든 '폴리스'를 하나로 아우르는 명칭으로 썼어요. 플라톤의 대화편들 곳곳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고요. 게다가 영어권 사람들도 아닌 우리로선 그냥 '헬라스'라 하면 될 걸 굳이 '고대 그리스'라고 번거롭게 말할 까닭이 없습니다. 원 답답해서….

헬라스 고전을 번역하면서 갖고 계신 번역의 원칙은요.

정확성이 으뜸가는 기본이겠죠. 번역문이 명쾌하지 않으면 그 원문에 대한 역자의 이해에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헬라스 고전을 번역하면서 나는 일본어 번역서는 아예 배제했어요. 최대한 일본 번역어에 오염되지 않은 상태로 우리말과 헬라스어를 직접 대응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전문 용어를 우리말로 옮기기 위해 어떤 경우에는 수십년 고심하기도 했고요.

라파엘의 그림 아카데미아. 플라톤(왼쪽)은 이데아의 세계인 천상을 향해 손을 위로 향하고 있고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 철학의 아버지답게 땅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선생님께서는 이번에 '지혜 사랑과 삶의 지혜'란 큰 주제하에서 '헬라스인들의적도 또는 중용의 사상'에 대해 강연합니다. 일반적으로 '중용'은 익숙한 표현이지만, '적도'(適度)란 표현은 낯선데요. '적도'란 표현을 특별히 사용하는 이유는, 그리고 '중용'과의 차이는 뭘까요.

'중용'이란 헬라스어로 '중간인 것'을 뜻하는 말(to meson)과 '중간 상태' 곧 중용을 뜻한다고 할 수 있는 말(mesotes)의 번역어죠.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덕적 또는 인격적 훌륭함(덕)을 규정하면서 지나침과 모자람의 양극단의 '중간 상태'라는 뜻으로 썼죠. 하지만 플라톤은 그런 뜻으로는 쓴 적이 없어요. 대신'알맞은 정도'(to metrion)란 표현을 많이 썼어요. 그런데 '알맞은 정도'란 뜻풀이에 가까운 표현이라 간단한 낱말로 '적도'(適度)를 쓰기로 했습니다. '적도'는 '중용'보다도 그 쓰임새가 더 포괄적이죠. 플라톤의 경우 자연과 기술, 그리고 실천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다뤄집니다. 그래서 '적도 또는 중용의 사상'이라고 이중적으로 표기한 것입니다.

그냥 '중용사상'으로만 말하지 않고 '적도 사상'을 함께 말하는 것이 훨씬 폭넓은 의미를 갖게 된다는 말씀이군요. 그런데 플라톤의 적도 사상도 초기 헬라스인들의 사상 속에 이미 그 싹이 트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을 텐데요.

◇고전 번역은 참나무 숲

무엇보다도 델피의 아폴론 신전 입구에 새겨져 있었다는 경구들, 곧 '무엇이나 지나치지 않게'나 분수를 알라는 뜻의 '너 자신을 알라'를 말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적도가 최선이다'는 격언도 그렇습니다. 또한 헬라스인이 살았던 자연환경도 적도 사상 형성에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헬라스인들은 지중해의 기후 때문인지 습도와 온도의 혼합 상태에 대해 매우 민감했어요. 이들은 대기 중의 온·냉·건·습이 혼합을 잘 이룬 상태를 '에우크라시아'라고 했는데, 이는 그런 것들이 최적 상태로 된 기온을 뜻합니다. 그들은 자연에서 얻은 이런 지혜를 포도주에 물을 적절한 비율로 희석해서 마시는 방식으로 구현하기도 했죠. 그런 기후에서 장시간 담소하며 포도주를 진액으로 마신다는 건 괴롭고 체력적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겠죠.

서양 고전 연구가 현대 우리 사회에서 지니는 의미는 뭘까요

저는 고전의 본격 역주작업과 관련, 문헌이 우리 학계에 미칠 영향을 참나무 숲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참나무 숲이 비옥한 토양을 조성하면 200종이 넘는 식물이 함께 자랄 수 있답니다. 이런 작업들은 이 나라 학계에 비옥한 학문적 토양을 조성해줄 것이 분명합니다.

선생님께서는 2009년에 플라톤의 최후 저술인 '법률'편에 대한 역주서를 내면서 플라톤의 적도 사상이 이 작품에서 가장 구체화되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이 작품이 현재의 우리 상황에서도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귀담아들어야 할 '법률'편의 정신은 무엇입니까.

플라톤 철학의 먼 여정이 '법률'편에서 끝을 맺습니다. 이 대화편 제목은 '법률'로 되어 있지만, 구체적인 법조문에 대한 논의보다는 법정신에 대해 말하고 있는 전문(前文)의 내용이 압도적으로 길어요. 여기서 플라톤은 나라에 "자유와 우애 그리고 지성의 공유"가 있어야 한다 강조하고, 이런 정신을 법조문에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법은 곧 '지성의 배분'이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 법이 지배할 때 '국가'에서 '본(本)'으로 제시된 이상적인 나라에 최대한 근접할 수 있다는 것이 플라톤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법조문은 대부분의 경우를 고려한 것으로 예상 밖 또는 새로운 상황에서는 미처 대처할 수는 태생적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상시적 보완 기구로 제시된 것이 당대 지성의 총집결인 '지도자들의 새벽녘 야간회의'인데, 이것은 법의 상시적 보완을 통한 수호 기구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법철학의 진수를 '법률'편에서 접할 수도 있겠는데, 우리나라의 법학전문대학원에서도 교육 과정에 이런 법정신에 대한 강의도 곁들였으면 합니다.


박종현 교수 공개 강좌 (명동 은행회관 2층 컨벤션센터)

▲ 10일 오후 3~6시, '지혜 사랑과 삶의 지혜- 헬라스(희랍)인들의 적도(適度) 혹은 중용의 사상'

▲ 11일 오후 3~6시, '플라톤의 적도 사상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사상'.

문의 (02)6366-00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