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우면산 산사태'가 난 1주일 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긴급 수방대책을 발표하면서 "시간당 100㎜ 집중호우에도 견딜 수 있도록 도시 수해 안전망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하수관거 용량 확대와 빗물펌프장·빗물저류조 확충 등에 10년간 5조원을 투입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하수관거 용량 확대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등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 같은 판단은 시민단체나 학자 등 외부 위원들 의견이 적잖이 반영된 결과다.

◇하수관거 용량 확대 유보

오 전 시장은 당시 시간당 최고 75㎜ 강우량을 소화할 수 있는 하수관거 용량을 장기적으로 100㎜로 늘리는 과제를 최우선 순위로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다만 이를 위해 10년 이상 공사기간에 예산만 17조원 넘게 필요한 만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진행하겠다는 설명이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하수관거 용량을 늘리는 게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라는 외부 전문가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은 이를 일단 유보했다. 공약에서도 밝혔듯 하수관거 증설 계획은 "무리한 토목공사"이며, "과학적 조사를 통해 수해 원인과 방지대책에 대한 중장기적 대안을 수립"하는 게 목표라는 것이다. 이는 서울환경운동연합이 논평을 통해 "지난여름 홍수 피해가 하수관거 부족에 의해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한 부분과 맥락을 같이한다. 서울환경운동연합 염형철 사무처장은 박 시장이 만든 희망서울정책자문위원회 자문위원이기도 하다. 염 사무처장은 "낡고 불량한 하수관거는 보수하고 교체해야겠지만 전부 다 바꾸는 건 비용에 비해 효과가 불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대심도 빗물터널 중단할 듯

서울시에서 지난 10월 추가 수방대책으로 발표한 대심도(大深度) 빗물터널도 대폭 수정될 전망이다. 시는 당시 광화문을 포함해 2021년까지 신월·화곡동, 용산구 한강로, 강남역 등 7곳에 8500억원을 들여 지하 30∼40m 깊이에 지름 5∼7.5m(광화문은 3.5m) 크기로 대심도 배수관을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박 시장 당선과 함께 정책 자문위원으로 들어온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가 "침수 방지에 전혀 효과가 없다는 연구가 있으므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사업이 불투명해졌다. 당장 내년 착공 예정인 광화문 대심도 빗물터널(사업비 396억원)부터 타당성을 검토하기로 했다. 서울환경운동연합도 "광화문 홍수는 빗물을 통과시키지 못하는 불투수(不透水) 보도가 많았고 C자형 하수관거가 역류했기 때문이지 대심도 터널은 해결책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광진구 자양동 등 24곳에 예정한 빗물펌프장 증설(10년 빈도 호우 규모→30년 빈도)과 서울대정문 앞 등 8곳에 들어설 빗물저류조 공사도 표류하고 있다. 박 교수가 "하수관거 개량이 우선되지 않으면 펌프장 용량 증설은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 안팎에서 "저류조, 하수관거, 펌프장 개선은 동시에 추진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반론이 많이 나와 일단 내년은 중단없이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박 시장 수방(水防) 철학은 불투수층을 개선하고 자연형 배수 체계를 개발하도록 권장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시 고위 관계자는 "물순환 환경을 손질하는 게 중요하지만 집중 폭우에는 어차피 힘을 못 쓴다"며 "토목공사라 비난을 받을지라도 수해 예방을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공사가 있다"고 했다.

고인석 서울시 물관리기획관은 "구체적인 방법론을 정할 때 내부와 외부 전문가 사이에 의견 조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