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선물거래와 외환 투자로 입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카지노에 손을 댔습니다. 처음에는 큰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회삿돈 106억엔(약 1585억원)을 카지노에서 탕진,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에 체포된 다이오(大王) 제지의 3세 경영인 이카와 모토타카(井川意高·47)는 일본 최고 명문인 도쿄(東京)대 법학부 출신의 엘리트 경영인이다. 그는 최근 회삿돈 유용에 대해 검찰이 조사에 착수하자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개인 재산을 불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주식투자 등 재테크를 했지만, 2008년 리먼쇼크로 거액의 손실을 보자 이를 만회한다며 본격적으로 도박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평소 "나는 다른 창업자 가족 CEO와는 다르다"고 말하는 등 도쿄대 출신으로서의 자부심을 보였다고 현지 언론들이 23일 전했다. 이카와는 2006년 제지업계 1위 기업이 업계 5위 업체에 대해 적대적 매수를 시도하자 "거대 기업끼리의 인수합병으로 상품가격이 올라 소비자들이 손해를 본다"며 반대운동을 전개해 백지화시키는 등 대외활동도 활발하게 해 '이론과 실력을 겸비한 경영자'로 알려져 있었다. 1943년 창립한 다이오 제지는 연간 매출 4101억엔(약 6조1270억원)으로 제지업계 3위이고 계열사가 35개이다. 이카와는 다이오를가정용 화장지 분야 1위 업체로 키우는 등 경영능력을 발휘했고 최근에는 중국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창업자의 손자로 2007년 6월 사장, 올해 6월에 회장직에 취임했다. 1500억원이 넘는 돈을 탕진하는 데는 2년도 걸리지 않았다. 싱가포르와 마카오 카지노의 VIP룸을 이용했으며 하룻밤 사이에 1억5000만엔(약 22억원)을 날리기도 했다. 회삿돈 유용사실이 발각되기 직전인 9월에는 1주일 만에 회삿돈 10억엔(약 150억원)을 인출하는 등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베팅액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의 파멸에 대해 엘리트의 실패 없는 성공 과정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오사카상업대학 다니오카이치로(谷岡一郞) 교수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들은 자부심이 남들보다 강하고 패배를 잘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카지노에서도 반드시 돈을 딴다는 착각과 오기에 빠져 베팅액수를 늘린 것 같다"고 분석했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제왕학(帝王學)을 배웠지만, 진정한 친구를 사귀지 못한 데 따른 고독함을 도박으로 풀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는 유흥가에서 돈을 물쓰듯 쓰는 '밤의 신사'로 통했고 연예인들과 마작을 자주 즐겼다고 산케이(産經)신문은 전했다.

1960년대 도산한 다이오 제지를 정상화시켜 불굴의 경영인으로 통하는 아버지 이카와 다카오(井川高雄·74) 전 회장은 아들이 초등학생 때는 비행기에 태워 도쿄의 학원에 보내는 등 누구보다도 자녀 교육에 열성적이었다. 이카와는 회삿돈 유용 사실이 아버지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임원들의 입단속을 철저히 시켰던 것으로 검찰조사에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이카와 회장이 다이오 제지의 7개 자회사에서 거액의 돈을 불법인출하는 동안 누구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은 것은 일본 특유의 폐쇄적 기업문화에도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