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는 18일 일본 교토 영빈관에 차려진 정상회담장에서 마주 앉았다. 두 정상은 8월 말 노다 총리의 취임 이후 양자 회담 2차례, 국제회의에서 3차례 만났다. 두 정상은 여섯 번째 만남에선 서로 할 말은 하겠다고 작심한 듯했다.

노다 총리가 한·일 경제협력 관계로 말문을 열자, 이 대통령은 "경제 문제 이전에 과거사 현안,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얘기해야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가 인식을 달리하면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법 이전에 국민 정서, 감정의 문제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평균 86세이신데 금년에도 열여섯 분이 돌아가셨다. 몇 년 더 있으면 다 돌아가실 수도 있다. 그때 가서는 해결할 길도 없다. 실무적 발상보다는 총리의 큰 차원의 정치적 결단을 기대한다"고 했다.

◇평화비 철거 놓고 격돌

노다 총리는 이에 대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법적 입장은 알 것이니 거듭 얘기하지는 않겠다. 우리도 인도주의적 배려로 협력해 왔고, 앞으로도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지혜를 낼 것"이라고 했다. 일본 정부의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겠다는 뜻이다. 노다 총리는 이어 "(위안부 할머니들이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평화비를 세운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실무 차원 의견은 전달된 것으로 알고 있고, 대통령께 철거를 요청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위안부와 평화비에 대해 "동상 문제를 얘기했는데 아마 일본 정부가 조금만 관심을 보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성의 있는 조치가 없으면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마다 제2, 제3의 동상이 세워질 것"이라고 맞섰다.

◇일본, 독도 문제 다시 꺼내

이날 정상회담은 당초 오전 8시 55분 시작 예정이었으나, 18분 지연된 끝에 9시 13분에 시작돼 1시간가량 진행됐다. 노다 총리는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논의 재개와 군수지원협정 등 안보 분야 협력도 거론했으나, 이 대통령은 이에 대해 언급도 하지 않았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의 80% 정도를 위안부 문제에 집중했고, 전날 2시간 동안 이어진 정상 만찬에서도 마찬가지였다"며 "한일 정상회담에서 우리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만 집중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정상회담 후에도 양국 간 신경전은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노다 총리와 친교를 위해 교토 시내 사찰 료안지(龍安寺)를 함께 방문했으나 예정됐던 방문 시간(25분)을 채우지 않고 13분 만에 귀국길에 올랐다. 노다 총리 역시 회담 전날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일본 외무상이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게 "독도는 일본 고유 영토"라고 발언한 사실을 이 대통령이 귀국하고 있던 시점에 일본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17일 한일 정상 만찬 시작 전 수행원들이 별도 대기 장소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겐바 외무상이 비공식적으로 천 수석에게 얘기를 걸어왔던 것"이라며 "일본의 왜곡된 독도 영유권 주장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에 앞서 17일 오사카 민단본부 강당에서 열린 동포 간담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일본은 영원히 한일 양국 현안을 해결하지 못하는 부담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이번 방일은 위안부 문제로 시작해 위안부 문제로 끝난 셈이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정상회담이 매우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진행됐고, 아쉬움이 많이 남는 회담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