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색이 난무하는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의 1911년 작, ‘인상 Ⅲ(Impression Ⅲ)’〈사진〉에서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형상은 없다. 이 작품의 부제가 ‘콘서트’고, 화가가 친구였던 작곡가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콘서트에 다녀온 직후에 스케치를 했다는 것을 알고 나면 비로소 검은 피아노 뚜껑과 객석에 앉은 청중이 보일 것이다. 피아노를 둘러싼 공간을 뒤덮고, 청중 사이로 스며들어 객석을 휘감고 있는 노란색은 그날 칸딘스키가 들었던 음악이다.

쇤베르크는 장조와 단조로 이루어지는 서양 고전 음악의 전통을 파괴하고, 무조(無調) 음악을 창시한 현대 음악의 거장이다. 처음 듣는 이들에게 그의 교향곡은 귀를 때리는 불협화음이나 다름없었다. 주위의 원색들과 강하게 충돌하며 마치 화면 밖으로 튕겨나올 것처럼 눈을 찌르는 칸딘스키의 노란색은 바로 그 소리의 ‘인상’인 것이다. 칸딘스키에게 음악은 회화를 위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교향곡은 노랫말 없이도 다양한 음색의 악기들이 뒤섞여 듣는 이의 마음속에 변화무쌍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칸딘스키는 자신의 회화도 교향곡처럼 요동치는 선과 색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영혼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이처럼 음악과 회화의 효과를 동일시했던 칸딘스키는 ‘공감각(共感覺)’의 성향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칸딘스키는 실제로 색을 듣고 음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이라도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색채의 폭발적인 향연 앞에 서면 공기를 울리는 웅장한 소리를 상상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