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원의 '묵란도'.

근대 서화가 소호(小湖) 김응원(金應元·1855~1921)은 묵란(墨蘭)으로 이름을 날렸다. 흥선대원군과 교분이 두터워 대원군에게 청탁이 들어온 난 그림을 대신 그려줬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였다. 난초 잎이 가늘고 단아하면서도 뻗어나간 기운은 힘찬 것이 소호 묵란의 특징. 흥선대원군이 추사(秋史)의 영향을 받아 사의(寫意·사물 형태보다는 그 내용이나 정신에 치중해 그림을 그리는 일)적인 난초 그림을 주로 그린 데 비해 소호의 묵란은 사생란(寫生蘭)에 더 가깝다. 소호는 1911년 근대적 미술학원인 서화미술회 강습소가 개설될 때 조석진, 안중식 등과 함께 지도 교사진에 포함돼 묵란법을 가르쳤다.

또 다른 근대 서화가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1868~1933)은 대나무 그림에 능했다. 근대의 묵죽화는 조선시대의 묵죽화풍을 계승하면서도 중국 청대 묵죽화풍을 본격적으로 수용해 감각적이고 장식적인 화풍을 보이는 것이 특징. 김규진은 자유분방하고 형태가 다양한 대나무를 즐겨 그렸는데, 그 가운데서도 특히 굵은 통죽(筒竹)을 잘 그렸다. 중간 먹으로 줄기를 그리고 짙은 먹의 가느다란 선으로 마디를 표현한 김규진의 묵죽은 이후 고암 이응노 등 근대 화가들에게 계승된다.

그는 영친왕에게 서법(書法)을 가르치기도 할 정도로 당대에 실력을 인정받는 서화가인 동시에 사진술을 도입해 천연당사진관을 개업,어용(御用) 사진사로도 활약한 인물이다.

1918년 서화협회 창립에 함께 참여할 정도로 당대엔 묵란과 묵죽으로 이름을 날렸던 소호와 해강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가 마련됐다.

11일부터 다음 달 19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는 '소호와 해강의 난죽'전이다. 소호 작품 20점, 해강 작품 13점, 소호와 해강의 합작품 1점이 나온다.

소호 김응원은 외따로 떨어진 바위 위에 피어난 난초 잎사귀와 꽃잎을 은근한 필치로 그려낸 후 이렇게 적었다. "산 깊고 해 긴데, 사람 자취 고요하고 향기만 그윽하다(山深日長 人靜香透)." 조맹부(趙孟頫·1254~1322)를 비롯한 중국 옛 서예가들이 난첩(蘭帖)에 제사(題辭)로 즐겨 썼던 글의 일부다.

김규진의 '월하죽림도(月下竹林圖)' 10폭병.

우찬규 학고재 대표는 "옛 사람들은 깊은 숲 속 돌 위에 자란 난초를 보고, 사람 손이 닿는 것을 꺼려 몰래 핀 것으로 해석했다"고 설명했다. 소호의 작품으로는 이 밖에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꽃을 피운 난초를 그린 '애란도(崕蘭圖)', 당나라 이백(李白·701~762)의 시 '대주문월(對酒問月)' 중 일부 구절을 해서(楷書)체로 써내려간 서예 등이 나온다.

해강 김규진은 보름달이 환하게 뜬 밤에 굵은 대나무와 죽순이 무성한 숲을 이룬 정경을 호방한 필치로 열 폭 비단 병풍 위에 그리고선 이렇게 적었다. "가을 소리는 귀에 가득한데 사람은 오지 않고, 거문고 뜯으며 긴 휘파람 부니 달이 떠올라 오네(滿耳秋聲人不到 彈琴長嘯月來侍)." 이는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699~759)의 영향을 받은 글이다.

김규진의 작품으로는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줄기와 댓잎을 실감 나게 묘사한 '풍죽도(風竹圖)'와 묵직한 예서(隸書)체로 '長生無極(오래오래 살아서 끊임없이)'이라고 적은 서예 작품이 전시된다. (02)720-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