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건설업자에게 금품 및 향응을 제공받은 이른바 ‘스폰서 검사’ 명단이 공개됐다. 2011년 9월에는 후배 검사에게 사건 청탁을 목적으로 고급 차를 받은 ‘그랜저 검사’가 실형을 언도받았다. 이번엔 ‘벤츠 여검사’다. 내연관계인 변호사의 요구로 사건을 청탁해주거나 내부 정보를 전해주고 외제 자동차, 명품가방 등을 받았다고 한다. 둘의 관계가 밝혀질수록 새로운 정황이 속속 드러나, 스캔들을 넘어 법조 게이트로 옮겨가고 있다.

‘그의 전화번호는 내 크리스마스 목록에 올라 있다. 연말이면 목록에 적힌 사람들에게 땅콩 한 통씩을 보낸다. 땅콩 믹스 깡통에는 리본과 나비 넥타이가 달려 있지만 그 안에 땅콩은 없다. 대신 현찰이 들어 있다.’

소설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 미키는 오직 높은 수임료를 받아 챙기기 위해 범죄자를 변호하는 인물이다. LA 뒷골목에 최고급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가 있다면, 2011년 한국에는 ‘벤츠를 타는 검사’가 있다. 30대 중반 한 여검사가 내연관계의 변호사에게 명품가방 등 5100여만 원어치의 금품과 함께 사건을 청탁받고 정보를 제공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진짜 오늘 샤넬 가방 값 보내줘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2005년이었다. '벤츠 여검사'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이 검사(36)는 대한법률구조공단 부산지부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서울 출신으로 서울예고를 졸업하고 한양대 법대를 나와 2002년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사업연수원 44회를 수료했으나 검사임용을 받지 못했다. 이 검사에게 1억4000만원 상당의 벤츠 승용차, 500만원 상당의 샤넬 핸드백 등을 건넨 것으로 알려진 최 변호사(49)는 부산에 있는 한 법무법인의 대표 변호사다. 2002년 창원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퇴직하고 로앤로 경남사무소를 개업했다.

이 검사가 부산에서 변호사로 근무하면서 안면을 튼 두 사람은 연락을 자주 주고받으며 가까운 사이가 됐다고 한다. 이 검사가 부산지검 동부지청에 발령을 받은 건 2007년, 경력직 검사로 임관하면서다. 그 후 최 변호사는 이 검사에게 자신의 담당 사건이 유리하게 진행되도록 일종의 청탁을 넣는다. 뇌물공여, 알선수뢰(공무원이 그 지위를 이용해 다른 공무원의 직무상 부정행위를 알선하고 뇌물을 받는 일) 혐의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실제로 이 검사는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가방을 구입하고 539만 원을 결제했는데, 당시 사용한 카드는 최 변호사의 법인카드(회사의 법인경비 집행 시 사용하는 카드)였다.

◇벤츠 여검사 스캔들? 최 변호사 게이트!
두 사람의 부당거래가 알려진 건 부산에서 대학 강사로 활동 중인 이 씨(40)가 대검에 진정(국가 또는 공공기관에 국민이 사정을 진술하고 어떤 조처를 취해주도록 요청하는 행위)을 내면서다. 이 씨의 진정서 내용에 따르면 최 변호사는 '부산지검 간부들과 담당 검사에게 로비를 해서 사건을 잘 처리해주겠다'는 각서를 써주며 이 씨로부터 상품권, 와인 등을 받아갔다고 한다. 그가 금품을 제공한 이들 중에는 현직 부장판사, 검사장 등이 포함되어 있다.

최 변호사의 새로운 내연녀였던 이 씨는 자신이 건넨 로비자금 중 일부가 이 검사에 갔음을 알게 됐고, 최 변호사에게 둘 사이를 정리할 것을 종용했다. 이에 최 변호사는 이 검사와의 관계를 청산하며 그동안 자신이 제공한 벤츠 승용차를 돌려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최 변호사와 이 씨의 관계도 틀어졌다. 현재 두 사람은 서로를 맞고소한 상태다. 최 변호사는 이 씨를 사기 혐의로, 이 씨는 최 변호사를 감금치상 혐의로 각각 고소했다. 대검에 진정이 접수된 건 7월이었지만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고 사건을 넘겨받은 부산지검은 ‘이 검사가 최 변호사에게 벤츠 승용차를 제공받아 타고 다녔으나 대가성은 없었다’고 처리하고 이 검사의 사표를 수리하는 것으로 사건을 일단락 지었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로 끝날 뻔한 이 사건은 이 씨가 자신의 진정서를 언론사에 제보하면서 이른바 ‘벤츠 여검사 사건’이 된다. 특히 사건의 내막이 알려질수록 최 변호사의 비리가 속속 드러나 ‘벤츠 여검사’ 사건이 아니라 ‘최 변호사 게이트’로 봐도 무방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11월 30일, 한상대 검찰총장은 이창재 수원지방검찰청 안산지청장을 특임검사로 선임, 진상 규명을 맡겼다. 진정인 이 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이 전 검사를 자택에서 체포해 부산지검으로 압송했다. 체포 전부터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최 변호사는 이 검사에게 건넨 금품에 대해 “개인적인 선물일 뿐 대가성은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서울예고 무용과 출신 검사?
일명 '벤츠 여검사'라 불리는 이 전 검사가 예술고등학교 무용과 출신이라는 점 또한 화제가 되고 있다. 서울예술고등학교 졸업 후 법대에 입학해 사법고시에 합격한 그의 이력은, '서울예고가 어떤 학교이기에?'라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의 모교인 서울예고는 다른 예고에 비해 내신 커트라인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중학교 내신 상위 4% 이내의 학생들이 주로 입학하며, 소수정예 교육을 표방한다. 특목고 중 명문대 입학생 비율도 높은 편이라고 한다. 2011년에는 전체 예고 중 서울대 입학생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일반적으로 예술고의 등록금은 인문계 일반고의 2배 반 정도다. 게다가 전공에 따라 1:1 레슨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비용부담이 적지 않다. 이 전 검사의 경우 아버지가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로 가정형편이 비교적 부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검사와 최 변호사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함 열어보니…
이: 피의자 이름 알려줘 진행상황이랑.
최: △△△. 16억 상당 업무상배임. 7억 상당 업무상 횡령.
이: 지휘는?
최: 내일 받는대.
이: 응, 연락해볼게.
이: 뜻대로 전달했고 그렇게 하겠대. 영장청구도 고려해보겠대.
이: ○○○ 검사한테는 말해뒀으니 그리 알어.
이: 백값 보내도! 368-XX-XXXX 신한 540만.
이: 진짜 오늘 샤넬 가방값 보내줘요. 540만원 신한 368-XX-XXXX 창원경찰에 다시 제출해. 경찰 쪽 통해서 사건구속 의견으로 올리는 게 나을 것 같아.


◇선물 혹은 뇌물? 법조인의 눈으로 본 '벤츠 여검사' 사건
변호사가 검사에게 준 '뇌물'로 보아야 하는가, 내연남이 내연녀에게 건넨 '선물'로 봐야 하는가는 '벤츠 여검사' 사건의 핵심 쟁점 중 하나다. 만약 뇌물이라면 그것은 어느 정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현직 법조인(법무법인 소속 변호사)에게 본 사건의 의미를 물었다.

-현직 법조인으로서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보나.
"개인적으로는 남녀 간 애정문제가 이 사건의 핵심이 아닌가 싶다. (언론에서) 포커스를 너무 법조계 비리 쪽으로 몰고가는 감이 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실질적으로 변호사가 사건을 청탁한다 해도, 그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애매한, 경계가 모호한 사건에는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도, 사건이 명백하다면 판결 결과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스폰서 검사' 사건, '벤츠 여검사' 사건은 모두 부산에서 일어났다. 지방에서 법조비리 사건이 빈번한 이유가 있을까.
"아무래도 서울보다는 지방이 더 밀착된 구조이긴 하다. 서울에서는 변호사와 검사의 만남 자체가 거의 없다. 많이 투명해진 편이다. 반면, 지방의 경우 조직의 규모 자체가 작고, 서로 잘 아는 사이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런 사건이 생길 가능성도 크다."

-이 검사는 부산에서 변호사로 근무하다 경력직 검사로 임관됐다. 흔한 일인가?
"그전에 변호사로 근무했던 법률구조공단이 같은 법무부 소속이다. 지검에 결원이 생기면 충원 인원이 내려온다. 사법연수원에서 성적이 모자라 검사에 임용되지 못한 사람이 경력직으로 검사가 되는 일은 자주 있다. 다만 그 자격요건이 경력 3년 이상인데, 이 검사는 2년 정도 근무한 걸로 알고 있다. 그 점이 좀 의아하다."

-이 검사에 대한 법조계 내부의 평판은 어떤가.
"주변 검사들에게 물어보니, 그동안 돌출행동을 한 경우가 몇 번 있다더라. 징계를 받은 적도 있고. 평판이 썩 좋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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