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불법·부실 대출 혐의로 구속된 도민저축은행 채규철 회장의 개인 창고(경기도 하남시 소재)에서 발견돼 세간의 화제가 됐던 '수퍼카' 가운데 일부가 다음 달 경매를 통해 새 주인을 찾게 됐다. 채 회장의 창고에서 나온 26대의 고급 외제차 중 우선 경매에 들어가는 차량은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페라리 612 스카글리에티, 포르쉐 카레라S, 벤츠 E350, 닷지 매그넘 등 5대로, 경매는 중고자동차 경매사가 아닌 미술품 경매회사가 맡는다. 수천에서 최대 수십억원에 달하는 명차들이 발견 1년여 만에 예술품들과 같이 경매에 부쳐지게 된 과정을 들여다봤다.

수퍼카들은 채씨가 도민저축은행 회장으로 재직하며 수백억원대의 불법·부실대출을 해주는 과정에서 담보로 맡았던 차량들로 26대의 가격을 합치면 100억원을 훌쩍 넘었다. 예금보험공사는 현장에 즉시 보안경비시스템을 설치하고 차량 도난 등에 대비해 전담 직원을 배치하는 등 관리에 들어갔다.

26대 가운데 9대는 원래 차주인이 대출금을 갚거나 이해관계인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하는 등의 이유로 반출됐다. 남은 17대도 곧바로 경매를 진행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수년간 시동도 걸지 않아 고장이 난 차도 있었고 무등록 불법차량이나 도난차량이 포함돼 있어 이를 정리하는 데만도 수개월이 걸렸다. 시가가 최고 25억원에 달하는 부가티 베이론은 사라진 자동차 키를 새로 만드는 데 1억원이 넘게 드는 상황이었다. 탤런트 연정훈씨가 2010년 도난당했던 포르쉐가 이 창고에서 나오기도 했다.

예보는 법률 검토와 성능 검사를 모두 통과한 차량 5대를 우선 경매 대상으로 선정하고 지난달 매각 대행업체를 선정하기 위한 입찰공고를 냈다. 2006년식 람보르기니 가야르도의 신차 가격은 5억4000만원, 2005년식 페라리 612 스카글리에티는 4억5000만원 정도다. 5대의 신차 가격은 도합 13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수퍼카 경매에 정작 자동차 경매회사들은 선뜻 나서지 않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에도 고급 외제차를 다루는 딜러가 있지만 최고가에다 차량에 얽힌 법률관계도 복잡해 선뜻 나서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고 사양의 수입차 경매는 국내에서 사실상 처음 열리기 때문에 결과를 두고 보자는 신중한 반응이었다는 것이다.

대신 미술품 전문 경매업체인 서울옥션이 관심을 보였다. 서울옥션은 6년 전인 2006년 랜드로버, 재규어 등 해외 유명 브랜드 승용차 10대를 경매한 경험이 한 차례 있다. 서울옥션 관계자는 "보통 경매에서 다루는 미술품, 보석, 와인 등과 마찬가지로 수퍼카도 일종의 기호품"이라며 "미술품 등을 구매하는 고객층과 수퍼카를 구입할 고객층이 겹칠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선 아직 활성화돼 있지 않지만 외국에선 많은 경매회사가 수퍼카를 취급한다"고 말했다. 서울옥션은 자동차 전문가들을 통해 수퍼카의 적정 경매 시작가를 정하고, 도록을 만들어 홍보를 진행한 후 9월 말 서울 평창동의 전시장에서 경매를 진행할 예정이다.

예금보험공사의 관계자는 "수퍼카 매각대금은 저축은행 5000만원 초과 예금자 등의 손실금 보전을 위해 쓰일 것"이라고 했다. 도민저축은행의 5000만원 이상 예금 피해자는 1188명, 피해 규모는 102억원에 이른다. 채 회장은 수백억원대의 불법·부실대출을 한 혐의로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