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5만의 경북 청도군에 전국 '주먹' 1500여명이 몰렸다. 15일 오후 청도군 화양읍 문화체육센터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J(51)씨의 결혼식에 원로 주먹과 전국의 폭력조직 두목·조직원들이 줄지어 나타난 것이다.

신랑 J씨는 주먹계에서 활동하다 1994년 구속, 15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으나 교도소에서 상해 등의 죄가 추가돼 무려 17년 10개월을 복역했다. 지난 3월 출소한 J씨는 지인의 소개로 10년 연하의 여성을 만나 이날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 J씨의 한 지인은 "허물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어서 늦은 나이에 결혼을 결심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지난 15일 오후 경북 청도군 화양읍 청도문화체육센터에서 열린 J(51)씨의 결혼식에 전국 각지의 주먹들이 참석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50여명을 동원해 현장을 감시했다.

결혼식 1시간 전인 오후 2시쯤부터 벤츠·BMW 등 수입 승용차가 줄지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370여대를 댈 수 있는 주차 공간이 순식간에 꽉 찼다. 모두 800여대가 들어왔고, 이 중 70%가 고급 수입차였다. 차에서 내린 하객들은 인상부터 특이했다. 이들은 짙은 양복에 40~50명씩 줄을 지어 '파'별로 입장했다. 맨 앞에 선 두목이 신랑 J씨와 악수하면 나머지 조직원들은 일제히 허리를 굽혀 "형님 축하드립니다" 하고 인사했다.

J씨는 폭력조직에 소속되진 않았지만, 전국 여러 교도소를 옮겨 다니면서 주먹계 인맥을 넓힌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후배들을 통해 전국 주먹계 선·후배들을 챙겨왔다고 한다.

주먹계의 걸출한 인물들도 눈에 띄었다. 맨손 싸움의 일인자로 알려진 원로 주먹 조창조(74)씨가 나타나자 너도나도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또 부산 영도파 두목을 비롯해 대구 동성로파·향촌동파·달성동파·원대동파, 경북 영천 팔공파 등 인근 지역 폭력조직의 두목과 조직원도 대거 참석했다.

청도 출신인 J씨는 결혼식을 앞두고 주먹계 외에도 친·인척이나 개인적 친분이 있는 지인, 각급 기관 관계자들에 600여장의 청첩장을 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탤런트 박은수(60)씨, 청도에서 활동 중인 개그맨 전유성(63)씨, 조우만(56) 청도 부군수, 이원우(49) 청도군의회 의장 등도 하객으로 참석했다. J씨는 일부 인사에겐 직접 찾아가 참석을 호소한 일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045㎡(약 316평) 규모의 실내체육관이 꽉 찼다.

축하 화환은 110여개였다. 70년대 서울 명동을 장악했던 신상현(78·별명 신상사)씨와 부산 칠성파를 이끄는 이강환(68)씨를 비롯해 광주·마산·남원·포항·경주 등지의 두목들이 보낸 화환이 놓여 있었다.

사회를 맡은 MC 조영구씨가 "이렇게 무서운 결혼식은 처음 와 본다"고 인사하며 결혼식이 시작됐다. 불교에 심취한 J씨의 주례는 서의현(76) 전 조계종 총무원장이 맡았다. 주례는 "과거에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각오로 행복한 가정을 꾸려 사회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했다.

긴장한 경찰은 현장에 50여명을 투입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특히 결혼식 전 각 폭력조직에 '90도로 고개 숙이거나, 큰소리로 인사해 불안감을 조성하지 말라'고 사전 경고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 단체 관리 대상 조폭들도 포함돼 있었지만, 수배자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결혼식 현장에서 검거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날 하객 답례품은 청도의 특산물인 '미나리 엑기스' 선물세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