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학

1년 안식년을 마치고 귀국해 보니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 "한 해 전까지만 해도 가장 과격한 재벌 개혁론자였던 내가 이젠 중간밖에 안 되더라"는 말을 농담처럼 하고 다니는데, 사실 농담이 아니다. 그만큼 기대도 크고, 동시에 우려도 없지 않다. 한국 사회가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는 선을 넘은 것은 분명하지만 어디까지 어떤 속도로 갈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어떤 교과서를 봐도 경제 민주화가 뭔지에 대해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하나의 정답이 제시되어 있지는 않다. 경제 민주화가 '출발선에서의 균등' '과정에서의 공정' '결과에서의 공평'을 포괄하는 것임은 분명하지만, 그 상호 관계 및 우선순위는 개인의 판단과 사회의 선택에 달렸다. 그것을 확인하는 장(場)이 곧 정치이고, 이번 12월 대선이다.

둘째,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정치 현실은 성숙되어 있지 않다. 경제 민주화는 임기 5년의 단임(單任) 대통령이 완성할 수 있는 간단한 과제가 아니다. 그런데 모든 후보가 유권자들의 인내심을 마모시키는 초강력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이는 선거 승리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집권 이후 비판 세력은 결집시키고 지지 세력은 이반시키는, 그래서 '실패한 대통령'을 반복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셋째, 국내외 경제 상황이 매우 불확실하다. 다음 대통령 역시 임기 첫해에 심각한 경기 침체 내지 경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경제가 어려운데 웬 경제 민주화냐"는 목소리가 높아질 게 뻔하다. 결국 새 대통령이 재벌들의 사보타주와 관료들의 정보 왜곡을 극복하고 경제 민주화를 일관되게 집행할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느냐가 관건이다.

한마디로 경제 민주화의 앞길은 험난하다. 그럼에도 나는 '다이내믹 코리아'의 힘을 믿는다. 다만 그 과도기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보다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경제 민주화의 과제는 '재벌 개혁'과 '양극화 해소'로 나눌 수 있다. 재벌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칭찬해 마지않을 일이지만 문제는 재벌 성장의 과실이 중소기업과 서민에까지 흘러넘친다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재벌기업이 경제력을 오·남용하고 총수 일가가 사익(私益)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벌들이 사회 협력의 틀 안으로 들어오도록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을 세우는 것이 재벌 개혁이고, 이는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 확립으로 요약된다. 그래서 재벌 개혁이 경제 민주화의 전부는 아니지만 경제 민주화의 출발점이 된다.

양극화 해소는 하도급 중소기업, 영세 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을 개선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즉 대다수 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으로, 경제 민주화의 본령이 여기다. 이게 없으면 경제 민주화가 내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냉소만 팽배한다. 문제는 이게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기업·노동·복지 정책의 체계적 조합이 필요하고, 일회성의 시혜적 조치가 아니라 당사자들의 참여를 통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을 공정하게 만드는 노력뿐만 아니라, 아무리 공정한 시장이라도 해결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사회적 보완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시장은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만악(萬惡)의 근원도 아니다.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시장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합리적으로 나누고, 공정한 시장을 만듦과 동시에 민주적 정부를 만들어가는 것이 경제 민주화의 과제이자 방법이다. 12월 대선에선 이것을 약속하고 실천하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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