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세가 되도록 미술에만 몰두하던 딸이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위를 데려왔습니다. 갤러리를 빌려서 둘만의 방식으로 결혼식을 치르겠다고 하네요. 대학로 나오시는 김에, 가을 문화 즐기고 가시면 됩니다. 축의금 화환 등은 정중히 사양하오니, 귀한 시간만 내주시면 됩니다. 깔끔하죠?"

지난달 홍남석(60) 한국대학신문 대표가 지인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다. 홍 대표의 딸은 지난달 27~31일까지 닷새 동안 서울 상명대 동숭캠퍼스 안에 있는 갤러리에서 '결혼 전시회'를 열었다. 낯선 두 사람이 어떻게 하나가 될 것인가를 주제로 신랑·신부가 직접 회화·비디오 작품 등을 제작해 갤러리를 채웠다.

지난달 28일 서울 동숭동 상명아트홀에서 홍남석(60) 한국대학신문 대표의 지인들이 홍 대표의 딸 부부(오른쪽)가 웨딩마치 대신 펼치는 ‘2인극’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덕담을 건네고 있다.

신혼부부는 전시 첫날 양가 친척 80여명을 초청해 그분들 앞에서 반지를 나눠 끼었다. 이후 나머지 전시 기간 동안 신랑·신부와 양가 부모들이 각자 편한 날을 정해 지인들을 불러 전시를 보여주고 덕담을 들었다.

홍 대표도 전시 기간 지인들을 그룹별로 나눠 차례차례 전시회에 초대했다. 전시회를 보고 나면 피로연 대신 인근 음식점에서 불고기 전골을 대접하고 함께 대학로에서 연극을 본 뒤 맥주를 마셨다.

하객들은 "이런 결혼식도 있다니 신기하다"고 했다. 신랑·신부는 턱시도도, 웨딩드레스도 입지 않았다. 청실과 홍실을 이용해 직접 디자인한 옷을 입고, 하객들 앞에서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 사랑하게 됐는지 보여주는 간단한 2인극도 했다. 신혼부부가 "좋은 말씀 부탁드린다"고 하자, 하객들이 "살다 보면 미울 때가 있을 텐데, 아무리 미워도 상처 줄 말은 하지 마라" "함께 밥 먹는 자리를 자주 만들라"고 했다.

하객 중 한 사람인 김신숙(52) 티에스잡앤잡 대표는 "처음에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와는 달리 신랑·신부에게 관심이 집중되더라"면서 "전시장을 나올 때는 진심으로 두 사람을 이해하고 축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홍 대표는 8년 전 큰아들을 장가보낼 때도 하객 100여명만 초대해 작은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하나뿐인 딸의 손을 잡고 웨딩마치를 할 기회를 놓쳐 아쉬웠지만, 딸과 사위의 뜻을 존중해주고 싶었다"면서 "하객들이 '빚 갚듯 축의금 내고 밥 먹는 자리가 아니라서 참 좋다'고 하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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