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지마 히로시 교수는“일본의 진보 역사학계조차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는 데 무기력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2002년 미야지마 히로시(宮嶋博史·65) 도쿄대 교수가 성균관대 동아시아 학술원 교수로 자리를 옮겼을 때, 한·일 학계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조선토지조사사업사 연구'와 '양반' 등 역저를 펴내 한·일 두 나라에서 주목받던 한국사 연구자가 도쿄대 교수 자리를 박차고 한국 대학을 택했기 때문이다. 15일 만난 미야지마 교수는 "당시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동아시아라는 틀 안에서 한국사를 연구한다는 목표를 이뤘기 때문"이라 했다.

내년 초 정년을 앞둔 미야지마 교수가 10여년간 한국에서의 연구 성과를 정리한 '미야지마 히로시―나의 한국사 공부'를 펴냈다. 책 속에서 그는 한·중·일의 근대를 해석하는 틀인 '소농사회론'과 '유교적 근대' 같은 연구성과는 물론 한국 역사학계의 문제점과 한·일 역사 분쟁에 대한 생각까지 풀어낸다.

미야지마 교수는 먼저 "한국 역사학계는 여전히 서구 모델에 기초한 내재적 발전론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했다. "고대-중세-근대로 이어지는 발전 경로를 밟은 나라는 유럽 몇 나라에 불과한데, 그걸 절대불변의 원칙처럼 동아시아나 다른 세계에 적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대부분의 역사 교과서가 '고대-중세-근대'로 쓰는 것은 이를 대신할 만한 모델이 없기 때문이지만, 이런 유럽 모델을 다른 지역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은 많은 연구자가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야지마 교수는 아베 정권 출범으로 한층 첨예해질 한·일 역사 갈등을 우려했다. "무엇보다 일본군위안부나 아시아 침략을 일본 사회가 해결해야 할 자신들의 문제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종전 직후 일본은 미군을 상대할 위안부들을 정부 차원에서 조직했거든요. 일본의 미래를 위해 이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역사 갈등은 한국과 중국 같은 이웃 나라와의 문제라고만 생각하게 되죠."

미야지마 교수는 "진보적 역사학계도 1990년대 사회주의 국가 붕괴와 함께 역사를 해석하는 거대담론이 무너져 논쟁이 사라지고 연구자들이 개별 실증연구에 몰두하면서 무기력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에 대해 학계가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 지식인들은 한국 지식인만큼 사회를 이끌어간다는 책임의식이 약하다. 조선시대 양반과 일본 사무라이 계급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고도 했다.

내년 정년을 맞지만 미야지마 교수의 연구 일정은 빡빡하다. 일본 역사학계 문제점을 지적한 '일본의 역사관을 비판한다'(창비)가 곧 나오고, 조선 족보를 연구한 '족보'(가제)가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일본에선 이와나미 출판사에서 '한국사' 통사, 도쿄대에서 '소농사회론'을 잇달아 펴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