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5일 북한의 위협에 따른 한반도 위기 상황과 관련해 대북 특사 파견을 제안했다. 카터·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민주당 박지원 의원, 문성근 전 최고위원 등을 대북 특사로 추천하기도 했다. 소수이지만 여당 일부에서도 비슷한 제안을 한 사람이 있었다.

지금 한반도의 '위기'라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북한이 일부러 만들어낸 위기다. 로켓 발사, 핵실험, 매일 같은 협박이 다 그렇다. 외부의 돈과 물자 없이는 생존하기 어려운 체제가 외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위기를 조장하는 낯익은 방식이다. 수법은 옛 수법 그대로이니 관심을 끌려면 협박 수위를 자꾸 높일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이나 평양의 외교 공관들에 한 위협도 그런 안간힘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북의 전략이 잘 먹히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당사국들이 북의 속을 알 만큼 알고 있다. 북이 외국 공관들에 "철수할 거면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영국은 즉각 "북의 레토릭(rhetoric·수사)"이라고 일축했고, 러시아·브라질 등도 "평양은 평온한데 무슨 철수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우리 국민도 북의 계산을 웬만큼 파악하게 됐다. 안보 불감증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북의 협박에도 안정을 유지하는 우리 사회 모습이야말로 북을 가장 고민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이번 상황은 북으로 하여금 제 손으로 위기를 만들어내는 수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만들 기회다. 그렇게 돼야만 한반도는 실질적 화해와 평화로 나아가는 협상 국면으로 들어설 수 있다. 이런 때에 만약 우리가 북한에 특사를 보내게 된다면 북한에 또 한 번 잘못된 신호를 주게 돼 한반도 문제는 다시 북의 협박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게 된다. 설사 특사가 간다고 해도 북은 문제의 근원인 핵은 그대로 둔 채 자기들이 일부러 만들어낸 위기 조치를 거두는 것을 큰 선심(善心)이라도 베푼 듯이 하면서 우리에게 터무니없는 대가(代價)를 요구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특사가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없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북한이 북한 주민들에게 남쪽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식의 허언(虛言)을 되풀이하면서 스스로 행동에 족쇄를 채우는 위험스러운 장난이 그들 자신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는 사태다. 그렇기 때문에 현 상황을 제어(制御)하는 데는 미국 특히 중국의 강력한 역할이 중요하다. 이 와중에 우리 측 특사 파견과 그 결과는 북한으로 하여금 상황을 오판(誤判)하게 만들 위험도 있다.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은 "북은 우리 여론을 자기들 힘의 중심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우리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어 미국의 특사나 한국의 대화 제의를 유도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김 실장은 "대화를 두려워하지 않지만 위기라고 해서 섣부른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 북이 대화 계기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특사를 제안한 사람들의 뜻을 모르지는 않지만 중국조차 북한에 특사를 보내길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군(軍)은 북이 10일을 전후해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우리가 북에 도발 구실을 주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면 결국 북은 자기들의 전략을 되돌아보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자멸(自滅)의 길로 가는 북의 도발에 철저히 대비하면서 북이 협상 테이블로 걸어올 때를 준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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