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 창의적체험활동 발표회 준비 과정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인터뷰하며 장래 희망이 바뀌었어요. 이전까지만 해도 인문학 교수가 꿈이었거든요. 그런데 이젠 미국 '클레멘트 코스(Clement Course, 소외 계층 대상 인문학 교육 과정)'처럼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인문학 교육을 실천해보고 싶어졌습니다. (문다훈, 서울 인창고 3년)

중 3 자녀를 둔 학부모 김수현(43·서울 서대문구)씨는 최근 신문에서 "일반계 고교(이하 '일반고')가 슬럼화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한 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는 "아이 성적이 중위권을 약간 웃돌아 일반고에 보낼 생각이었다"며 "일반고 교육 질이 (슬럼에 비유될 정도로) 낮다면 무리해서라도 자율형사립고(이하 '자사고')에 보내야 하는 것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반고의 교육 환경이 열악하기만 한 건 아니다. 대입 수시모집·입학사정관 전형 확대를 계기로 변화를 꾀하는 일반고가 크게 늘고 있는 것. 특히 최근엔 대입에서 '교내 활동' 반영 비중이 늘면서 동아리·봉사·진로 등 학교 차원의 비교과활동이 점차 다양해지는 추세다. "특목고·자사고만 못하다"고 평가되던 요즘 일반고 비교과활동, 어떻게 달라졌을까?

과학실험 보고서, 창의적체험활동 보고서 등 각자 작성한 비교과활동 결과물을 든 채 포즈를 취한 서울 인창고 학생들. 맨 왼쪽은 이 학교 안유민 교사다.

대회·동아리… 고교별 개성 담은 프로그램 '풍성'

서울 인창고(서대문구 충정로)는 올해로 3년째 창의적체험활동 발표회를 운영 중이다. 뜻 맞는 재학생이 소그룹을 이뤄 탐구·체험활동 계획서를 학교에 제출하고 삼사 개월간 활동한 후 그 결과를 보고서로 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우수작(20편) 작성 그룹은 전교생 앞에서 발표할 기회도 얻는다. 임병욱 인창고 교감은 “우리 학교 재학생에게 각자 소질과 끼를 맘껏 발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어 마련한 활동”이라며 “그 덕인지 지난 대입 당시 내신 5.3등급인 학생이 경희대에 합격하는 등 졸업생 37명이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했다”고 말했다.

인창고는 이 밖에도 △효행 에세이 대회 △인창 후마니타스 상점제 △문학·역사·창작·탐구 발표대회 △인창봉사대상 등 다양한 제도를 운영한다. 교내 경시대회 수는 50여 개. 동아리 활동도 활발하다. 과학동아리에서 활약 중인 김성민·백승윤(3년)군은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등 과목별 선생님의 지도 아래 매주 다른 주제로 실험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인창봉사대상을 받은 박제형(3년)군은 법무부 주관 ‘사회관리 청소년 멘토링 봉사’를 꾸준히 해 온 공로를 인정받았다. 박군은 “학교에서 상을 받은 후 봉사에 대한 열의가 더 커졌다”고 귀띔했다.

서울 동북고(강동구 둔촌동) 역시 동아리 활동 분야에서 명성이 자자하다. 이달 초 이투스청솔이 발표한 고교별 동아리 활동 분석 결과에 따르면 동북고 재학생의 동아리 참여율은 117.6%에 이른다. 2013년 4월 현재 개설 중인 분야별 동아리 수만 30개가 넘는다. 강방식 동북고 교사는 “우리 학교 학생들은 교내 동아리 활동을 통해 교과에 대한 흥미를 키우는 한편, 협동심·배려심·리더십 등도 배운다”고 설명했다. 동아리 활동은 종종 ‘봉사’로도 이어진다. 경제동아리 소속원이 각자 배운 내용을 초등 저학년생에게 가르치는 식이다. 강 교사는 “고교 입학 직후 동아리에 가입한 학생은 1학년 때부터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더라”며 “고교 시절 비교과활동에 열심인 학생일수록 대학 진학 후에도 매사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말했다. 시야의 폭이 넓어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이를테면 우리 학교 ‘적정기술’ 동아리에선 문·이과생이 한데 모여 제3세계 국가를 위한 적정기술을 연구합니다. 동아리가 아니었다면 교류가 전무했을 아이들이 지식을 나누며 자연스레 융합형 학습을 체득하죠.”

전공적합성 함양에 초점… 교과 연계로 '시너지'

서울 문일고(금천구 시흥동)의 비교과활동은 재학생의 ‘전공적합성’ 함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해부터 운영 중인 ‘심화 동아리’가 대표적 예. 회원들은 제2외국어·한국사·영어·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 좋아하는 과목을 골라 지도교사와 함께 심화 학습한다. 김혜남 문일고 교사는 “깊이 없이 흉내만 내는 비교과활동으로는 입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 등 각계 전문 기관에서 강사를 초청해 진행하는 금융·리더십 캠프도 몇 년째 이어져 오는 문일고의 인기 프로그램. 김 교사는 “우리 학교 재학생은 1학년 때부터 진로교사와 집중 면담 기회를 갖고 자신의 비교과활동 내용을 기록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일반고에서 비교과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건 3년 전쯤부터예요. 고교선택제 시행, 자사고 지정 등으로 위기감을 느낀 일반고의 자구책인 셈이죠.”

서울 재현고(노원구 중계동) 운동장은 매주 토요일이면 떠들썩해진다. 배드민턴·농구·테니스·축구 등 재학생 중심의 스포츠 활동이 펼쳐지는 ‘토요스포츠클럽’이 열리는 날이기 때문. 재현고는 방과후 수업에도 도예반·축구반·삼국지강독반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 예체능 교육에 힘을 쏟는다. 수요일마다 한 시간씩 진행되는 독서 활동도 주목할 만하다. 교과별 필독서를 지정, ‘교과 연계 독서’를 실천 중인 것. 엄익주 재현고 교사는 “축제 때마다 열리는 ‘우리집 가훈’ 행사나 학부모봉사단 연계 활동 등을 통해 가족 간 결속력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며 “다채로운 비교과활동을 도입한 이후 학생 선택권이 넓어지고 학교생활기록부 내용이 풍성해지는 등 여러모로 대입에 보탬이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