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의 첫 책을 출판하게 돼 영광입니다. 인세는 정가의 5%를 드릴게요. 업계 관례가 그렇습니다."

의과대학 교수인 A씨는 지난 5월 건강 실용서를 출간하면서 출판사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인세는 출판사가 책 판매 부수에 따라 저자에게 지급하는 돈. 출판계 분위기를 전혀 몰랐던 그는 "5%가 관례"라는 말에 별다른 고민 없이 계약서에 사인했다. 출판사는 4대 온라인 서점의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책을 광고하고, 이메일 할인 쿠폰까지 발행하는 등 공격적 마케팅을 펼쳤고, 책은 '가정·생활'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통상 국내 저자가 받는 인세는 책값의 10%. 여러 출판 관계자는 "1980년대 이래 지속돼온 출판계의 암묵적 관행"이라고 했다. 주연선 은행나무 대표는 "이문열·신경숙씨는 물론 올여름 장편 '28'로 돌풍을 일으키는 정유정씨 등 대다수 소설가의 인세는 10%"라고 말했다. 책값이 1만원이라면 한 권 팔릴 때마다 인세 1000원이 저자에게 돌아가는 셈. 서점에는 정가의 50~60%에 공급하기 때문에 인쇄·종이값·디자인비 등 제작비 20%, 유통 10%, 마케팅 비용 10~15%를 빼면 출판사 순익은 10% 정도다.

그러나 출판 환경이 급변하며 인세의 진폭이 커지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조앤 롤링 등 흥행이 보증된 해외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선(先)인세가 10억원 넘게 치솟은 지 오래다. 일부 작가는 20%까지 요구한다. 반면 자기계발서, 경제경영서 중 출판사가 기획 출간한 책, 첫 책이라 편집자가 손을 많이 봐야 하는 경우엔 10%보다 낮게 준다.

인세를 낮추는 출판사들은 "극심한 불황, 과도한 마케팅비 지출 등의 요인으로 제작비가 치솟아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팔릴 책'을 만들기 위해 출판사의 품이 더 들어간다는 얘기다.

자기계발서나 실용서인 경우 콘텐츠는 좋으나 필력이 떨어지는 저자의 책은 '윤문(潤文) 작가'를 따로 고용해 문장을 다듬어야 하므로 비용이 추가된다. 유명인의 저작에 윤문 작가를 투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력을 인정받은 윤문 작가는 저자에게 돌아갈 인세의 40%까지 받는다. 학술서는 인세 대신 신간 수십권을 주기도 한다. 일부 저자는 "인세를 덜 받겠으니 마케팅을 세게 해달라"고 먼저 요구한다.

"5% 인세는 좀 심한 것 아니냐"는 반응도 출판계 내부에서 나온다. 한 출판사 대표는 "최근 2~3년 동안 베스트셀러를 많이 낸 B출판사가 저자 인세를 7~8% 수준으로 낮추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제 5%까지 등장한 거냐"고 되물었다.

지나치게 낮은 인세가 창작·집필 의욕을 꺾어 장기적으로 출판의 토대를 허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인터넷 서점의 할인, 과도한 마케팅 비용을 저자에게 전가하려는 일부 출판사의 행태는 문제가 있다. 창작자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저자를 '을(乙)' 취급하는 것"이라고 했다.